클린턴의 ‘터프’ 메시지…한미중 ‘김정일 이후 대비’

아무래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그냥 흘려 보내기는 어렵다.

19일 클린턴 장관은 서울공항 도착 전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북한이 조만간 후계 문제를 둘러싼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지도부 상황이 불투명하다”며 “누가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전략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의 리더십 상황이 불확실한 시기에 우리가 북한의 태도에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을 갖는 것”이라면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듣기를 원하며 우리는 분명히 몇 가지 구상을 하고 있지만 책임을 공유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들은 갑자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짧은 내용이 아니라 준비된 내용이었다. 이보다 하루 전인 18일 방송된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은 “미국은 북한 내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획책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을 압축하면 ‘현재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하니까, 미국 한국 중국은 김정일 이후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클린턴의 이런 발언에서 중첩된 의미를 찾으려 하거나 굳이 행간을 읽어내려고 노력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면 그대로 ‘지금 김정일 체제가 불안하다. 한국, 중국은 함께 대비하자’는 뜻이다.

자신의 19일 발언이 뉴스의 쟁점이 되자 20일 유명환 외교장관과 회담을 마친 후 클린턴 장관은 “(북한 내부의) 어떤 비밀 정보를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며 “(김정일 이후의) 비상계획 등 모든 것을 다 고려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후계문제와 관련하여 무슨 ‘고급 비밀정보’를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불안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일반론’을 언급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클린턴의 발언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반론’으로 흘려보내도 될까? 그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사 클린턴이 김정일의 후계문제와 관련하여 비밀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미 국무장관이 그런 발언을 한 것 자체가 의미있는 정치외교적 행위가 된다. 더욱이 클린턴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자신이 국무장관이 된 이후 첫 해외 방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對아시아 정책의 첫 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클린턴의 19일 발언을 국무부 견해로 확인까지 해주었다.

그렇다면 클린턴이 한국 도착에 앞서 김정일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은 김정일 당신 체제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6자회담에서 약속한 북한 핵폐기 프로세스 등을 잘 수행하면 미북간 관계개선까지도 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게 안되면 미국은 불안한 당신 체제에 대해 향후 한국 중국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책임을 공유할 것이다’는 말을 김정일에게 던진 것이다. 따라서 클린턴의 발언은 꽤’터프'(tough)하고 ‘다이렉트'(direct)한 것이 맞다.

클린턴 장관이 미 국무부 수장으로서 북한에 대한 발언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표현에서부터, ‘악의 축’ ‘레짐 체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클린턴은 그중에서 김정일이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한국, 중국과 함께 ‘김정일 이후’를 대비하겠다는 상당히 강력한 선택지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미 국무장관은 전세계를 상대로 한다. 따라서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오로지 김정일 한 명만을 겨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한국, 중국과 책임을 공유하려 한다’는 대목에서 클린턴은 특히 중국을 의식하면서 김정일 정권이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이 적극적으로 ‘김정일 이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김정일 이후’라는 표현을 쓴 적이 한번도 없다. 따라서 이번 클린턴의 발언은 중국에게 꽤 압박을 줄 것이다.

부시 행정부 시기 라이스 국무장관은 퇴임 전 “바보들이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클린턴 장관 역시 북한이 핵포기를 할 것으로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은 지속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번 클린턴의 발언은 대포동 미사일로 위협하는 김정일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 아주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이번 서울 방문에서 클린턴 장관은 한 가지 노련한 모습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보즈워스 전 주한 미 대사를 서울에서 ‘대북특사’로 공식화 한 것이다. 이 역시 평양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즈워스 특사는 지난 3일~7일 미국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여 클린턴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친서는 북한 측에 ‘6자회담을 통한 핵시설 검증 작업의 조기 완료’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측이 이례적으로 곧바로 “미국과 양자대화를 원한다”는 답변을 주면서 ‘핵 프로그램 신고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여…’ 식의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비핵지대화)론을 주장했다고 한다. 북한측이 클린턴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클린턴이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보즈워스 전 대사를 대북특사로 공식화한 행위도 김정일에게 한방 먹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이 이번 방한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과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중 공조’에 대한 강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