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과 한반도

북한에 억류된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4일 전격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현직 재임 시절부터 한반도와 다양한 인연을 쌓아 왔다.

아칸소 주지사로 46세에 불과했던 지난 1992년 대선에서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공화당 소속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을 크게 누르고 미국 제42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그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쟁위기까지 고조됐던 1차 북핵위기를 겪기도 했다.

당시 같은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1차 북핵위기 해결의 큰 돌파구가 마련되자, 클린턴 행정부는 북측과 공식 회담을 이어간 끝에 경수로 제공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제네바 합의에 이르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특히 한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뒤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발맞춰 북한에 대한 유연한 정책을 주도했다.

대북 화해를 기조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대북정책의 틀로 채택했고, 북미 미사일 협상 등도 진행시켰다.

재임 당시인 2000년 10월에는 북한군 차수였던 조명록의 미국 방문을 통해 북미간 상호 적대시 정책 배제, 상호주권 존중, 무력 불사용, 내정 불간섭 원칙이 포함된 역사적인 북미 공동코뮈니케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특히 조명록의 미국 방문과 뒤이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려고 했다.

하지만 같은해 11월 실시된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돼 임기 말 클린턴의 방북에 제동을 걸었고, 북한이 미사일 협상에서 양보를 하지 않음으로써 방북의 명분도 크게 얻지 못하면서 야심차게 추진되던 미국 현직 대통령의 방북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금도 회고하고 있다.

2001년 퇴임 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에이즈 퇴치 활동 등을 위해 클린턴 재단을 설립하고 자선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강연으로 거액을 모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는 왕성한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열렬한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고, 자신과 과거 인연을 맺은 인사들에 대한 각종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한다.

또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후에도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종종 메모를 보내고, 조 바이든 부통령과도 1주에 한 번쯤은 대화를 나눈다고 미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신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 오르면서 부인의 최고 보좌관으로서의 역할도 적지 않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힐러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조언하고, 힐러리도 자주 남편에게 여러 사안들을 물어본다고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유엔의 아이티특사로 임명돼 활동중이기도 하다.

퇴임 후 8년이 넘는 기간 야인으로 살아온 그가 이번 방북을 통해 김정일과 어떤 담판을 짓고 돌아올지 주목된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