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즈 재판 보고도 북한인권법 주저하나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북한인권법이 재상정됐다. 법사위에 회부된 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여야는 10분간의 입장발표 시간을 가졌다. 이것으로 끝. 처리 절차도 없이 상정만 한 채 회의를 마쳤다. 언제 처리한다는 기약도 없다. 그 시간 비를 맞고 국회 앞에서 인권법 통과를 외치던 탈북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여야는 올해 들어 북한인권법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법사위 상정 요구가 이어졌고, 직권상정이 준비되다가 결국 누락됐고, 최근 신임 여야 원내대표가 만나 인권법 재상정을 합의했다. 그러나 인권법의 최종 상태는 결국 법사위 계류다. 


앞서 미 국무부는 북한을 인신매매 최악 국가인 3등급 국가로 재지정 했다. 2003년 이후 9년째 최악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국무부 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강제 노동과 강제 결혼, 성매매를 당하는 남성, 여성, 아동들의 공급국이다. 이동과 통신의 제약·감시,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송환 후 강제노역, 강제 낙태와 영아 살해 등 기막힌 참상이 몇 해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20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북한 인민보안부에서 발간한 ‘법투쟁부문 일꾼 참고서’도 이 같은 처참한 인권현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 문건은 북한의 인권실상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9년 6월 발행된 이 문건은 791쪽 분량으로 형법, 민법, 형사소송법 등 3개 법에 관련된 총 721개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할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이 문건은 북한주민의 인권현실이 얼마나 처참한지, 주민들이 각종 국가적 범죄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문건에는 주요 지하자원의 밀거래,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사적 치부, 마약과 위조지폐의 광범위한 유통 및 제조, 심지어 오랜 식량난에 따른 주민들의 집단난동과 식인, 인육의 유통 등의 사례가 나온다. 거르고 걸러서 분류한 것이 이 정도라면 문건에 적시되지 않은 인권유린 사례 등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빈사역경(瀕死逆境)을 뚫고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과 국내외 인권단체들, 그리고 북한 주민의 목소리을 통해 우리는 이 같은 처참한 인권현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들의 증언은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대북관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실효적 대북정책에 대한 자성(自省)을 요구했고, 그 결과 2005년 최초의 북한인권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그러나 자리싸움에만 급급한 한심한 정치현실은 이를 오랜기간 외면해왔다.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특수성을 언급하며, “인권문제가 없다” “인권문제 제기는 존엄을 건드리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힘이 실리는 형국이 펼쳐졌다. 북한인권법 제정 주장을 펼치면 ‘전쟁론자’로 낙인 찍히는 어이없는 일들도 벌어졌다.


북한 주민의 구제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결정적인 징표가 속속들이 확인됐지만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발목 잡혀 북한인권법은 외면받기 일쑤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야권통합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민주당의 ‘시간 끌기’는 물론 ‘가장 뽑기’라는 집안싸움에 급급한 한나라당의 통과의지도 의심받는 현실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권력 세습과 체제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인권이 개선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북한 주민의 인권을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인도적 지원과 개입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북한이 미국 인권특사를 초청해 환대한 것은 식량지원 목적에 따른 것이지만, 미국 인권법이 이룬 중요한 결실이다. 어찌됐든 미국 인권특사가 북한을 방문해 북한 당국자들과 인권대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에 인권법이 없으면 인권특사도 없고 북한과 인권대화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27일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대규모 학살사건의 핵심 전범 4인방에 대한 재판이현지에서 시작됐다. 대학살이 있은 지 30년이 더 지나 이뤄지는 이 재판은 자국민 학살과 반인권 범죄 처벌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인권 탄압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큰 역사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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