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크로싱’(감독 김태균)이 오는 6월말 개봉을 앞두고 영화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국내에 이미 1만명이 넘는 탈북자가 정착했고, 중국에는 3~5만명의 탈북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탈북자 문제’가 국내 영화 소재로 다뤄지는 것은 그리 흔치 않다. 특히 영화 제작에 탈북자 출신이 참여하는 것은 보기 드문일이다.
개봉을 앞두고 여러 화제를 낳고 있는 ‘크로싱’에는 주연 배우 ‘차인표’나 김태균 감독 못지 않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본인이 탈북자 출신인 김철영(34) 조감독이다.
1999년 탈북-2001년 강제북송-2001년 재탈북 과정을 직접 경험한 김 조감독은 ‘탈북자’를 주제로 한 이번 영화가 영화의 배경이나 탈북자들의 심리를 사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게 조연한 1등공신이다. ‘데일리엔케이’는 이런 그를 18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 조감독은 ‘크로싱’ 제작을 마친 3월 이후 줄곧 지방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쉬이 연락이 닿지 않다가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김태균 감독이 처음 같이 영화를 하자고 할 때 굉장히 망설였다는 그는 “김 감독에게는 다른 영화를 하고 있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프거든요. 나의 경험을 피하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어요”라며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오히려 부담스러웠음을 털어놨다.
이어 “다시 만났을 때 김태균 감독이 그러더군요. ‘네가 당사자인데 피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서겠느냐 네가 나서야 한다’고요. 이 문제로 부인과도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결국 나는 아픔을 기억하길 힘들어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도 북한에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영화제작에 같이 하게 된 동기예요”라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크로싱’은 경상남도 양산, 강원도, 몽골, 중국에서 로케이션됐다. 처음 고증연출부 제2조감독으로 들어갔던 김 조감독은 8개월간 장소 헌팅을 다니면서 가장 좋은 촬영장소를 찾아다녔고, 북한군의 의상과 세트 등 북한의 실제 모습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고증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김 조감독 제작과정의 아픔을 이렇게 소회했다. “용수(차인표)와 준이(신명철)가 통화할 때 가장 서러웠어요. 부럽고, 슬프고…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 생각이 밀려오고, 인간이 최소한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이 내 과거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져서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준이가 굶은 장면을 촬영하는데, 내가 소똥에 박힌 옥수수를 꺼내 먹으며 탈북 했던 생각이 났고, 또 집결소 장면에서는 내가 경험했던 청진집결소를 재연했는데, 조그마한 우물까지도 재연했어요. 감독님의 큐 사인에 군인이 움직이고 사람들이 줄 맞춰 움직이는 모습에 정신없다가도 여유를 가지고 볼 때는 내 경험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공포감과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제작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그는 ‘크로싱’에서는 조감독까지 승진됐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앞으로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 탈북자 출신의 영화감독이 만들어 나갈 영화세계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김철영 조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크로싱’ 제작은 영화 ‘국경의 남쪽’ 제작 참여 이후 2번째 북한소재 영화인데.
|
“‘국경의 남쪽’ 영화는 제작 과정이 힘들기도 했고, 흥행이 안돼서 더 힘들었다. 이후 북한관련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그런데 김태균 감독님이 같이 영화를 하자고 할 땐 시나리오는 참 좋았지만 굉장히 망설였어요. 김 감독에게는 다른 영화를 하고 있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프거든요. 나의 경험을 피하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어요.
다시 김태균 감독을 만났을 때 나에게 그러더군요. ‘네가 당사자인데 피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나서겠느냐 네가 나서야 한다’고요. 이 문제로 부인과도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결국 나는 아픔을 기억하길 힘들어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도 북한에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영화제작에 같이 하게 된 동기예요.”
-영화에서 김 조감독의 구체적 역할이 무엇이었나.
“처음에 제작에 들어갈 때는 고증연출부 제2조감독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연출부 조감독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됐는데, 2007년 2월 감독이 저를 찾아서 연출부 조감독을 제안해 오더군요. 그때부터 경상남도 양산, 강원도, 몽골, 중국 등을 돌며, 헌팅을 했어요.
영화에서 탈북한 용수가 중국 목재소에서 일을 하는데, 실제 제가 중국 벌목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장소를 만드는 일을 도왔습니다. 몽골 장마당, 강원도 북한 함경북도 마을 재연 세트 등에 일을 도왔습니다. 영화에서 장마당과 집결소장면에는 30여분의 탈북자분들이 참여했는데, 그분들로부터 ‘내가 살던 고향 같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더군요. 또 북한군인의 의상, 배지, 군인 견장 등과 대본 수정 등의 일도 했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제 아내도 대본 수정에 도움을 줬습니다.”
-가까이에서 봤던 김태균 감독에 대해 평가 한마디 부탁한다.
“사실 김태균 감독님은 제작팀 사이에서는 영화계에서 피해야 할 감독 중 한 명이예요.(웃음) 김 감독님은 현장에서 모든 조건을 활용해 연출하려하죠. 그래서 제작팀 입장에서는 모든 상황을 준비해야 되거든요.
크로싱에서 김 감독님이 배우에 대한 애정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배웠습니다. 사실 준이역으로 신명철군의 캐스팅 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김 감독님은 기다리고 기다린 과정에 신명철이란 보물을 찾아 내셨어요.”
-제작자 입장에서 영화 ‘크로싱’을 평가해 달라.
“북한의 실상을 100% 표현되었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10%라도 리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해요.
제작과정에서는 집결소에 잡혀온 임신부 구타 장면을 연출하는데, 연출부에서 논쟁이 많았어요. 사실적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펌프’라는 가혹행위, 경찰이 탈출도 모질라 중국 종자를 받아 왔냐며 배를 때리고 짓밟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모습이 사회적으로는 너무 리얼한 모습일 수 있어 오해가 된다면서 수위를 조절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제작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나?
“영화가 3개국에서 촬영됐는데, 여행 스트레스도 컸고, 현지에서 보조연기자를 통솔하는 일도 힘들더군요. 150~200명 정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통솔해야 하는데 연출부와 감독님이 고생이 컸어요.
연출부가 해외에서 그렇게 하고 들어와서 한국사람 보조출연자를 통솔하는데 ‘이 정도는 껌이다’고 하더군요.(웃음)”
-아프겠지만, 탈북 했던 과정을 말해 줄 수 있나?
“저는 황해북도 사리원 출신입니다. 북한사회가 도저히 사회주의 국가라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요구로 생략한다) 그래서 1999년에 탈북하게 되었고, 2년 동안 중국에 머물다 2001년 2월 중국 공안에 붙잡혀 화룡 변방대, 북한 무산 교도대를 거쳐 청진집결소를 거쳤고, 다시 탈북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제가 실제 탈북 할 때 건넜던 두만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30여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강폭이지만, 1미터 1미터가 몇 킬로처럼 느껴졌고, 순간순간이 몇 날 며칠처럼 느껴졌었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인가?
“영화감독입니다. 이번 지방에서 내려가 시나리오 썼는데,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아프고 슬픔만 있는 영화가 아닌 액션과 공포 장르에서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액션분야는 내용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거든요. 베트남전 영화가 자국의 포로를 구하면서 상대국의 비윤리성, 인권 등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처럼 액션으로도 내용을 관객의 심장이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나리오를 맞춤법에 맞게 수정하고 있고, 캐릭터를 살리는 일 등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