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도미네!”– 故 김경식 목사님께

▲ 故 김경식 목사 장례 예배

눈물 나도록 그리운 김경식 목사님.

저 기억하시죠? 목사님이 광주계림교회 담임목사 하실 때, 목사님이 늘 이름이 좋다, 이름값을 하라며 귀여워해 주시던 중학생 꼬맹이 곽대중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큰 사고까지 당했을 때, 남루한 단칸방 저희 집에 찾아와 쾌유와 행복을 바라는 기도를 해주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목사님. 그동안 목사님 소식은 신문으로 접할 수 있었어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이 되셨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대표회장이 되셨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물론 생전에 목사님의 인품은 절대 그런 직위에 연연하거나 내세울 만한 분이 아니지요.

민주, 인권 외치시던 목사님 모습 생생

지난해 목사님께서 소천하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장례식장에 찾아 뵙고 싶었는데, 조용히 기도 드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사실은 교회에 다니지 않은지 오래됐는데도 힘들고 어려울 땐 저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돼요. 언젠가는 탕자처럼 주님 품으로 돌아갈 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사님. 저도 그동안 ‘운동권’으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고, 북한정권을 추종하며 살아보기도 했고, 지금은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데 목사님,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다녔던 교회의 영향이 컸습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목사님은 성경말씀을 전하실 때에도 늘 시국과 연관해 민주주의와 통일을 역설하셨죠. 어린 마음에도 그런 말씀을 들을 때면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87년 6월항쟁이 한창이던 때, 예배를 마치고 금남로로 향하던 대학생 형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복음성가집에 들어있던 ‘금관의 예수’, ‘아침이슬’,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노래를 배우며 자연스레 저도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깊이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집이 멀리 이사를 간 뒤로도 “기장(기독교장로회)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저도 한동안은 ‘참여가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요. 목사님은 그런 생각을 갖게 한 토양이 되어주셨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이제는 하늘에 계신 목사님의 존함을 이렇게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유는 사실 우울한 이유 때문입니다. 어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원로들을 비롯한 일부 기독교 성직자들이 ‘2005 기독교성직자 시국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했어요. 그 선언문을 읽으며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어요. 그리고 목사님이 간절히 생각났지요. 그래서 이렇게,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만 이야기해도 부족할 텐데,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리게 되었네요.

누가 그의 이웃이냐?

시국선언의 내용인즉, 최근 여당이 통과시킨 사학법에 찬성하고, WTO체제에 반대하며, 미국이 제정한 북한인권법에 반대하는 것이었어요. 사학법이나 WTO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제가 탄식했던 것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그분들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관점과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가장 비(非)정치적이고 순수한 인간애에 입각해 보아야 할 인권문제를 주님의 뜻을 전한다는 분들이 왜 그렇게 정치적이고 편협하게 생각하시는지 답답할 때가 많아요.

그분들이 어제(26일) 이렇게 말했어요.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핵심이 심히 왜곡돼 있다”고. 그러나 지난 수년간 제가 북한인권운동을 해오면서 ‘인권의 핵심을 심히 왜곡하고 있다’고 느낀 분들은 오히려 이번 시국선언을 하신 성직자들 같은 분들이었어요. 인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현실’로부터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북한 인민의 현실이 어떻습니까? 맞아 죽고, 굶주리고, 끌려가고, 억압당하고, 고문당하고…. 그 참혹한 현실이 우선 아닙니까? 이런 현실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왜 미국이 어떻고 하는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목사님.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가 생각나요.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죠. 그때 동족인 유대인 제사장이 그를 보고 그냥 지나쳐 버려요. 친근한 레위인도 못 본 척 하죠. 그러나 정작 그를 도운 사람은 원수처럼 여기던 사마리아인이었다는 말씀. 사마리아인은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 눕힌 후, 여관주인에게 돈까지 주면서 그를 돌봐달라고 당부합니다.

목사님이 전해주셨던 이 일화에 얽힌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못해요.

“누가 강도를 만난 자의 이웃이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입니다.”
“가서 똑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장 25-37절)

목사님. 제 생각은 이래요. 미국이 어떠한 불순한 의도를 갖고 북한인권법을 만들었건 말 건 중요한 건 ‘북한인민의 현실’이라고. 그리고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그 법을 폐지하라고 엉뚱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미국보다 더 열심히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얼마 전에 북한 신의주에서 비밀예배를 보던 지하신도들이 수십 명 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개신교 성직자들이, 그에 대한 규탄까지는 아니어도 좋으니 진상을 규명하라는 목소리만이라도 내었더라면 제 실망은 이토록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들은 동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되려고 할까요?

다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

목사님. 더 드리고 싶은 말들이 산처럼 많지만, 목사님과 나누고픈 추억 어린 이야기도 많지만,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어제 저는 개신교 성직자들의 시국선언을 보면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했던 말,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Quo Vadis Domine)”라는 탄식 섞인 질문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지요.

“나의 양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를 지러 간다.”

남한의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목사님과 같은 양심적 성직자들이 기꺼이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상당한 수준의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남한의 민주화가 성공의 언덕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북녘을 민주화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수순 아닐까요? 모두 기꺼이 두 팔 걷고 그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의 인권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이 위선의 나라에서, 그들이 못 본 척하는 죽음의 땅으로 “나의 양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니 눈물 겹습니다.

죽음과 고통, 우상의 땅을 위해 기도하는 주님의 참된 종들이 이 땅에 차고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경식 목사님, 하늘나라에서도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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