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로부대 출신 납북자 위패 현충원에 첫 봉안

한국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특수임무를 맡았던 ‘8240유격백마부대(켈로부대)’ 출신 납북자 고(故) 최원모(1967년 납북·당시 57세) 씨 위패가 11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됐다.


전후 납북자의 위패가 현충원에 봉안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최 씨와 함께 10년 전 사망한 부인 김애란 씨의 위패도 함께 봉안됐다.









▲최성용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가 11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부친인 켈로부대 출신 납북자 최원모 씨의 위패에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구준회 기자


켈로부대는 1949년 6월 주한 미 극동사령부 정보 참모부 산하 특수부대로 창설됐다. 부대 별칭인 ‘켈로’는 ‘KLO(Korea Liaison Office·주한 첩보연락처)’의 한국어 발음에서 따왔다.


당시 약 3만 명 정도로 구성된 켈로부대는 첩보수집 등의 임무를 맡았으며 부대원 모두 이북 출신으로 구성됐다. 전쟁 중에 6000여 명이 전사했고 현재는 2000~3000명이 생존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 씨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 전쟁 당시 켈로부대 소속 ‘북진호’의 함장으로 해상에서 적(敵)을 섬멸하고 중국군 포로와 식량 등 물자를 노획하는 전공(戰功)을 세웠다. 그러나 최 씨를 포함한 켈로부대 부대원 대분분은 군번도 없는 비정규군인 탓에 개별적인 기록이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 씨는 전쟁이 끝난 후 1967년 6월 연평도 인근에서 ‘풍북호’를 타고 조업 중에 동료 선원 7명과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 북한은 다른 선원들은 돌려보냈지만 최 씨의 경우 켈로부대에서 활동했던 사실이 밝혀져 1970년 인민재판에 회부돼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 7월 켈로부대 출신 납북자인 최 씨에게 처음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했다.  


최 씨의 아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이날 현충원에서 열린 호국영령 합동 위패 봉안식에서 “현충원에 부친을 모시게 돼 국방부와 현충원에 감사한다”면서도 “아직도 북한에 납치돼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517명”이라며 이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최 대표는 특히 북한이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조사위원회 등을 꾸려 활동을 시작한 것과 관련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 동포라고 말하면서도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조차 안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납치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북한에 납북자 생사확인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0년 이후 북한을 탈출해 남한의 가족 품에 돌아온 납북자는 9명에 불과하며 이 중 8명이 최 대표의 도움으로 귀환했다. 이들 외에 최 대표는 국군포로 12명과 이들의 가족 50명을 남한으로 데려온 바 있다.


한편 이날 교도통신, NTV(니혼테레비) 등 일본의 언론들은 최 대표 부친의 현충원 봉안을 관심 있게 보도했다.


특히 교도통신 관계자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납북자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최 대표가 납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더 이해가 안 된다”라며 “국가도 해결 못 하는 납북자 문제를 최 대표가 해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