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박근혜 정부의 북핵외교 출발선

I.
윤병세 외무부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에서 한국 외교 대상지역의 우선순위를 발표하여 ‘비외교적 처사’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핵심은 일본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임성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선(先)제재 후(後)지원’을 제안하러 중국을 방문하였다고 밝혔다. 얼핏 서로 관계없다고 보이는 두 상황은 잘 생각해 보면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윤병세 장관 내정자의 발언은 임성남 본부장의 대중 임무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현재 조어도(釣魚島) 분쟁 당사국인 일본과 중국을 놓고 한국이 중국을 더 중시하고 있음을 고백함으로써 중국이 이번만은 유엔 안보리에서 솜방망이 대북제재안을 강요하지 말기를 간청한 것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윤 내정자는 북한이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회담, 시간낭비나 다름없는 죽은 회담, 그러나 중국이 애지중지하는 6자회담을 북핵문제 해결의 수단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중국에 최대의 애정표시를 하였다.


게다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하여 ‘선(先)제재 후(後)지원’이라는 해괴한 대책을 제안하였다. 또 중앙일보에 의하면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와는 별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우선 시작하고 인도적 조치 외에도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더 강력한 추가 제재가 나올 것이 분명하고 이는 한반도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매우 크게 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안보리의 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호응이 있어야 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김정은에게 이번에 저지른 못된 짓에는 한국도 중국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하지만, 김정은이 잠깐 종아리를 걷고 참고 있으면 큰 선물을 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제안이 해괴한 이유는 그것이 북핵 실험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제재를 가장한 보상’일뿐더러, 북한의 추가 도발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시킴으로써 막을 수 있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에 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며 지금처럼 엄중한 상황 하에서는 ‘그래도 우리는 이만큼 너를 위해 애를 썼다’는 자기위안적 명분 만들기 이상의 의미는 없다. 왜 이런 해괴한 제안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도발에는 강력하게 응징하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신뢰를 구축하자’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대본에 현실을 맞추려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한국, 북한이 해야만 하는 역할을 대본에 따라 할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니 일단 북한의 핵실험에 강력한 제재안이 나와야 하지만, 그것이 다시 북한을 자극하여 새로운 도발을 만들어 신뢰구축을 불가능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북한에 대한 ‘따뜻한 위로’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라면 제2의 연평도 포격에는 강력하게 응징하되, 이 응징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말아야 하니 동시에 북한에 ‘응징 보상성 원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원조는 분배투명성을 확보한 국제기구를 통하여 적정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고, 핵문제와 분리를 원한다면 굳이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유엔제재와 분리된 인도적 원조’란 말 자체가 이미 유엔제재와 연계된 것이다.


결국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신뢰구축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무력화시킴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더욱 마음 놓고 도발하도록 초청장을 보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과 이명박 정부의 바람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제안’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김정은의 결단을 구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결단? 현재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측은 김정은이며 결단을 해야 할 측은 한국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II.
윤병세 외교부 장관 내정자의 중국 구애 작전은 옳은 외교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일본보다 더 우선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중국이 한국에게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환심을 사려는 방책이고, 일본이 과거보다 한국에 더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단기적 계산으로 인해 일본에게 외교적 모욕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드시 후과가 있을 것이며, 한국 외교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강조하던 장기적이고 중후한 ‘신뢰’는 어디로 갔는가?


차라리 한국 정부는 이번에 유엔 제재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로 유명무실해지면 확실하게 반대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유엔이라는 국제사회가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향후 한국의 독자적인 북핵 억지력 확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솜방망이 유엔제재안에 반대함으로써 ‘유엔제재에 한국이 참여할 경우 처절하게 보복하겠다’는 북한의 협박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이 북한의 협박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핵실험-도발-협상의 사이클의 중간을 끊어버리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지금 유엔제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유엔제재가 북한이나 이란의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못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이제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의 핵위협에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하면서, 미국의 확장된 핵우산의 정확한 개념과 구체적 조건, NPT 체제란 미국, 러시아, 중국과 같은 거대 핵보유국들이 국지분쟁에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국지분쟁 당사국들의 준수 의미가 있다는 점, 북핵문제가 특정 시점 이후까지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일본이 독자 핵무장을 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양해를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 미국, 일본의 대응로드맵을 천명하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고, 일본과 조어도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에게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고 참여할 수도 없는 한·미·일 3국의 북핵 공동대응 로드맵은 악몽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공개적으로 독자 핵무장 가능성을 제안하거나 핵무장 결의를 할 경우 중국은 북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이라는 비정상 국가의 비정상 행태를 시대착오적인 북·중동맹이라는 이해관계에서 끝없이 관용하고 있는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NPT 탈퇴를 비난할 자격도 없으며, 미국을 포함한 세계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경제제재 할 명분도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의 비핵화는 조건부이며, 이 조건을 국제사회가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독일정부는 독일의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NPT에 근거해 철수해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하였으며 심지어는 정밀유도 전술핵무기로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미국은 독일정부와 국민의 의사에 반(反)해서, 그리고 NPT 정신을 훼손하면서 ‘나토의 적절한 전쟁 억지력 확보’라는 이유로 전술 핵무기를 계속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상황은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그리고 미국의 확장된 억지력에 모호성이 존재함은 미국의 전문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중지시키려면 북핵을 철거하도록 주요 핵보유국들이 북한정권을 압박해야 하고, 북한정권이 말을 듣지 않으면 북한정권을 바꿔야 한다. 즉 한반도를 중국에 우호적인 지역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자충수로 인해 중국에 비우호적인 신(新)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것을 방치할 것인지 중국은 이제 가능한 빨리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엄중한 상황 하에서 한국 정부는 국제공조라는 명분하에 심봉사(심청전 속 심청 아버지)가 젖동냥하듯 중국의 선처를 애걸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 이점은 현재 한반도에서 북핵게임의 참가국들의 면모만 보아도 명백하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핵대국이며 일본은 플루토늄 대국, 그리고 이 게임의 주인공 북한은 조만간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것이다. 이런 핵의 숲에서 ‘소녀의 기도’와 같은 대북정책, 각국의 이해타산으로 해(解)가 없는 고차방정식을 빈손의 조연(助演) 한국이 풀겠다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이런 상태로 제4차 핵실험이 일어나고, 이런 상태로 1년이 지나갔다고 생각해 보라.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은 북핵 대응에 대한 시간표를 밝히는 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