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박사 “우라늄 농축 성공에서 핵실험까지 6년 걸려”

북한이 이달 3일 우라늄 농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함에 따라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무기 기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에 우라늄농축 기술을 이전한 장본인으로 주목받은 인물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다. 그가 지난달 말 파키스탄 현지 방송에 출연, 파키스탄 핵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북한과의 핵 협력 여부에 대한 입장을 공개한 내용이 8일(현지시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오픈소스센터에 의해 확인됐다.

북한에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전한 파키스탄은 실험 성공 이후 무기화까지 6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북한에 HEU 기술을 유출한 사실이 적발돼 가택연금 됐다가 최근 풀려난 바 있는 칸 박사는 북한-파키스탄 핵 커넥션 시발점과 관련, 인도와 대결하고 있던 상황에서 미사일 기술이 필요했으며 북한과의 거래를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기술진이 1990년대 중반 파키스탄의 카후타 핵시설을 방문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핵 기술은 핵 시설을 방문하거나 일부 장치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입수하는 대가로 자신이 파키스탄의 핵기술을 북한에 넘겨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또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자서전 ‘사선에서’를 통해 P-1형 원심분리기가 2001년 파키스탄에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공개한데 대해 “그럴 수 있다”면서도 자신은 이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미사일 전문가로 위장한 북한의 핵 전문가들이 파키스탄 칸 박사 연구실을 방문해 비밀 브리핑을 받았다”면서 “칸은 북한에 거의 20기의 원심분리기를 넘겨주고 기술 지도도 해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칸 박사는 “1994년 미사일 기술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으며, 이후 북한 사람들이 파키스탄에 와서 베나지르 부토 당시 총리로부터 돈을 수령했고, 이후 우리는 미사일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그렇게 많은 비용은 들지 않았고, (북한에 건낸 돈이) 5천만달러 정도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이 1999년 다시 북한을 방문했음을 시인하면서 “당시 무샤라프 군 참모총장이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을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우리는 북한에 가서 200기의 미사일을 구매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의 HEU 기술과 관련해서는 1978년 처음으로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으며, 6년여 뒤인 1984년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북한이 우라늄 농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어 HEU 핵 개발 완료까지는 최소 수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1978년 4월 6일 첫 원심분리 농축우라늄을 획득했다”면서 “하지만 당시에는 저농축우라늄(LEU)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연구를 거듭한 끝에) 60%의 (농축) 결과를 얻었고, 수많은 도전을 극복한 끝에 1983년 초 (무기화가 가능한) 90%의 농축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폭탄 개발을 위해서는 천연 우라늄을 정제해 그 속에 포함된 우라늄(U) 235 동위원소를 90% 이상 농축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파키스탄의 핵기술이 외부에 유출되고 있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은 서방의 선전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칸 박사는 ‘언제 우라늄 핵폭탄 개발이 완료됐느냐’는 질문에 “1984년 12월 핵폭탄이 준비됐으며, 1주일 내에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공개했다.

이 밖에 그는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이란은 중요한 이슬람 국가로 이란이 핵기술을 획득하기를 원했다”면서 “(핵 장비) 공급자들과 접촉해서 장비를 구입하도록 조언을 했다”고 밝혀 기술 협력이 이뤄졌음을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