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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신문 ‘국제면(面)’을 보는 것이 즐겁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화 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2003년부터 중앙아시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각각 장미혁명, 레몬혁명, 오렌지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지난해 연말까지 구(舊)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더니, 올해에는 그 불길이 이집트, 아제르바이잔, 쿠바,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 붙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쉽게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는 나라도 있지만 낡은 것을 몰아내고 새 것을 불러들이는 우렁찬 민중의 목소리가 전해질 때마다 ‘저 함성이 북한에서도 울려 퍼져라’고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
북한에 비하면 쿠바는 자유천국
오늘 <조선일보> 1면에는 쿠바에서 카스트로에 반대하는 장외집회가 열렸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사진이 의외였다. 경찰 곤봉에 맞아 끌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참석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의자에 앉아 집회를 하고 있었다. 쿠바 국기가 머리 위로 펄럭이고 참석자들의 복장도 자유로운, 사진 설명이 없었다면 ‘열린음악회’ 정도로 착각할만한 사진이었다.
카스트로가 비록 장기집권을 하고 있지만 쿠바의 자유도가 북한보다 백 배, 천 배, 아니 일만 배는 높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었다. 만약 북한에서 이런 집회가 가능하다면 북한인권∙민주화운동 단체들은 존립의 의미가 없고, DailyNK도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백주대낮에 장외집회를 할 수 있는 나라의 인권실태를 전하기 위해 이처럼 어렵게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간혹 ‘DailyNK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반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언론의 자세로서 적절치 않다’라고 지적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지적은 감사하지만, 감정이 아니라 냉철하게 이성으로만 따져보아도, 오히려 그럴수록 김정일 정권을 용인하기 어렵다. 자국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고, 수십만 명을 수용소에 잡아 가두고, 일체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러면서 핵개발에만 광분하는 정권을 앞에 두고, 제대로 자세를 갖춘 언론인이라면 그 진상을 정확히 고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런 사명감과 의무감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인데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고의적으로 무시해버린다면 언론으로서 문제가 있다. 이런 점을 지적해주는 것은 DailyNK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고마운 일이며 언제라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그러나 DailyNK는 창간 때부터 “북한의 인권실현과 민주화를 지향한다”는 것을 첫 번째 편집방향으로 견지해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쿠바에 사람 굶어죽었다는 소식 없어
여하튼 쿠바의 반(反)카스트로 집회 사진을 보면서 오늘의 북한을 되돌아본다. 아직도 일부 얼빠진 친북좌파들은 북한의 식량난을 미국의 경제봉쇄 탓이라고 하고, 핵개발도 미국의 탓이며, 심지어는 북한에 인권탄압이 있다는 것을 일부 인정하면서 그것도 미국 탓이라고 한다. 전지전능한 미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야말로 친미주의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쿠바를 보고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립과 봉쇄, 압박으로 친다면 미국 바로 발 밑에서 반세기 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쿠바가 북한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중국, 소련 등 인접한 사회주의 국가라도 있었으나 쿠바는 그러지 못해,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배치하려다 미국의 저지로 무산된 사건까지 있었다. 그런 쿠바에서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전해진 바 없다.
쿠바가 안보를 위해 핵개발을 시도했다는 소식 역시 들은 바 없다. ‘카스트로 반대’의 ‘반(反)’자만 나와도 일가친척을 모두 멸한다는 말을 들어본 바 없으며, TV와 라디오를 국영채널로만 고정시키고 이를 어겼을 시 정치범으로 처벌한다는 소식 또한 들어본 바 없다. 외국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을 잡아다가 노동단련대에 보내고 공개처형을 한다는 소식은 더더욱 들은 바 없다.
DailyNK의 역사적 사명
카스트로가 집권한지 이제 46년째다. 집권기간으로 따진다면 세계 1위이지만 누구도 ‘장기집권’만을 이유로 카스트로를 물러나라고 하지 않는다. 인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면, 어느 정도 생활을 보장해주고 있다면, 일단 독재자의 ‘낙제점’은 면할 수 있다.
우리가 김정일을 반대하고, 그러한 입장을 숨기지 않고 DailNK의 편집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김정일의 집권 기간 때문이 아니다. 그의 국가운영능력과 인민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낙제점이며 실패한 독재자 가운데 최악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카스트로의 절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지은 죄가 너무도 크고 많아서 쉽게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북한문제와 관련된 모든 결론은 김정일이 하루빨리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날까지 DailyNK는 창간사에 밝힌 대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보도를 중시”하면서 “북한의 인권실현과 민주화를 위한 국내외 여론형성에 주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