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닮은 김정일에 개혁은 쓸데없는 모험”

북한이 십 수 년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은 왜 경제 개혁의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일까?

세종연구소 정한구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세종정책연구 4권 2호’에 게재한 ‘김정일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제 개혁 패턴을 분석한 결과 기성(旣成) 지도자인 김정일이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평가했다.

정 연구위원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화 개혁의 제안자는 대부분이 집권 지도자 자신”이라며, 특히 “개혁 지도자는 거의 모두 신참 지도자로서 이들은 집권 초에 개혁을 제창함으로써 지배 엘리트 및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자신의 통치 권위를 확립하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예로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례를 들었다. 고르바초프의 경우 당시 지배 엘리트들로부터의 압력과 갓 권좌에 오른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덩샤오핑도 마오쩌둥(毛澤東)이 후계자로 지목한 화궈펑(華國鋒)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장 경제 개혁의 길을 택했다는 것.

그러나 “북한의 경우 김정일은 기성 지도자로서 경제개혁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고양할 필요성이 신진 지도자들에 비해 적을 것임이 분명하다”며 “이런 점에서 개혁은 김정일에게 있어 쓸데없는 모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김정일은 많은 점에서 쿠바의 카스트로와 비슷하다”며 “카스트로는 쿠바 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마지못해 시장화를 시도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을 극히 혐오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김정일의 경우도 시장을 도입하는 데 흥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北, 위아래로 자생적 시장화 발생 가능성 높아”

이어 “쿠바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도자 주도’의 체제는 지도자의 집권이 장기화될수록 현상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결국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나야 쿠바에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의 경우도 기득권적 통치자로서 그가 어느 날 시장경제 개혁의 ‘발의자’로 돌변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일이 카스트로와 닮은 또 다른 점은 “그가 누구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바 없다는 사실”이라며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세습 받은 것으로, 김일성은 이미 작고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누구에게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김정일의 권력 상속으로 북한은 ‘세습제’ 국가와 비슷한 형태를 띄게 됐다”며 “이러한 체제에서 국가는 지배자의 세습재산이며, 국정은 지배자의 개인적인 용무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시장화를 제안하고 추진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가 자신의 소유라는 사고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정일은 섣불리 개혁에 나섰다가 고르바초프와 같이 권좌에서 축출되거나, 심할 경우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처럼 인민봉기로 단두대에 서게 될 수도 있음을 진정으로 우려할 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개혁에 나서기까지 “한국의 존재는 김정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또 다른 부담일 것”이라며 “시장화 개혁은 대외 개방을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며, 이 경우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한국을 알게 한다는 것은 김정일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마지막 담보로 핵무기 개발에 온 힘을 다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 남쪽과의 결사적인 경기에서 이미 경제적으로 만회할 수 없도록 한국에 뒤지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며 “이는 바로 김정일의 정통성과 권위에 대한 위협과 연관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김정일이 경제의 개혁개방과 관련해 한국에 대해 느끼는 위협은 결국 북한 주민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라며 “이들이 한국 국민이 향유하는 자유에 고무되어 북한에서 참여의 목소리를 낼 경우 이것 역시 김정일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한편 “김정일이 시장경제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사실상의 시장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위로는 지배 엘리트 계층이 국가재산을 절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자생적 사유화, 밑으로부터는 장마당에서 확산되는 자생적 시장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라며 “국가의 실패로 인해 의도되지 않은 경제질서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