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42년 철권통치, 시민軍 총탄에 막 내리다

42년간 철의 통치자로 군림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가 과도정부 측 시민군에 체포돼 병원 이송되던 중 20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리비아 내전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카다피는 시민군에 의해 발견될 당시 하수관 안에 몸을 은신하고 있었다. 시민군의 증언에 따르면 친위군 시신 옆에 쓰러져 있던 그의 온 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양 다리에도 큰 부상을 입었다. 한 손에는 황금 권총을 쥐고 있었지만 이미 “끝까지 싸우겠다”던 의지는 상실한 상태였다. 생포직전 시민군에게 던진 마지막 말은 “쏘지마”였다.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을 거둔 카다피의 시신은 미스라타로 옮겨진 상태다. 카다피 시신을 검진했던 의사는 그가 머리와 복부에 총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카다피가 어떤 상황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장에 있었던 과도정부군 아델 부사미르는 “과도정부군 병사들이 카다피를 마구 때렸고, 누군가가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아흐메드 바니 과도정부군 대변인은 “카다피가 저항하려 해서 무력화시켰다”고 전했다.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카다피는 한 도로의 배수구에 숨어 있다 체포됐으며, 체포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카다피는 시르테 인근에서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다 과도정부 측 시민군에 생포됐다. 하지만 카다피가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은신처에서 나와 이동을 감행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외신들은 “그가 공습으로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어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거나 시르테가 이날 시민군의 손에 넘어간 만큼 또 다른 은신처로 옮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오후 지브릴 총리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카다피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성명을 통해 “카다피 사망은 폭정의 세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또 리비아 국민이 오랫동안 겪어오던 탄압의 시기에도 종말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1969년 9월 쿠데타로 집권해 42년 동안 독재자로서 리비아를 통치해왔다. 그러다 지난 2월 20일 ‘재스민 혁명’의 영향을 받은 리비아 트리폴리 시민들이 ‘카다피 퇴진’ 시위에 돌입했고, 이후 카다피 친(親)정부 세력과 내전을 벌였다.



카다피 세력이 시위대에 무자비한 무력 진압을 펼치자 유엔의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근거로 한 서방 연합군이 군사개입을 시작했다. 이후 친정부 세력은 수도인 트로폴리를 버리고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로 퇴각했고, 결국 시민 봉기 개시 8개월 만에 카다피의 죽음으로 내전이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