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사망…北 공식반응 언제쯤 나올까?

42년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으로 리비아 민주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떤 ‘대응’을 선택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매체는 21일 오후까지 별다른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양강도 내부소식통은 이날 오후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카다피 원수의 사망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면서 “수령님(김일성)에게 직접 조선식(북한식) 정치를 배워갔다는 사람이 그렇게 험한 최후를 맞이했다니 우리(북한)도 체면이 서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로만 놓고 보면 노동당 차원에서 구체적인 내부 입장이 확정되기 전까지 당분간 북한의 공식 매체들의 침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지침’이 만들어지면 이를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내부 교양내용을 확정하게 되는데 통상 ‘간부용’과 ‘일반 주민용’으로 나누어 제작된다. 고위 탈북자들은 간부용 교양내용에는 사실관계를 담은 정보가 더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북한 정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국제사건으로는 1989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 차우셰스쿠의 공개처형, 1991년 소련 및 동구사회주의권의 잇따른 붕괴, 2006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교수형 등이 꼽힌다.


차우셰스쿠의 처형을 지켜본 김정일은 간부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강화하며 ‘충성서약’을 요구했다. 당시 김일성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고, 북한 내부 경제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만큼 주민들에게 이 사건 자체를 숨기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근무했던 탈북자 A씨는 “북한 당국은 차우셰스쿠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했던 전 과정을 간부들에게 알려주며 사상교양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부각되지 않던 때라 루마니아 사태를 ‘먼 나라 일’ 정도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과 사회주의권의 연쇄 몰락은 김정일에게도 큰 위기 의식을 불러왔다. 김정일은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당원, 인민군, 주민들의 사상교양을 강화했다. 김정일 명의의 논문에서 등장했던 “붉은기를 지키면 살고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내용으로 문답식 경연대회까지 가질 만큼 교양사업에 공을 들였다.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권 붕괴 소식을 가장 처음 접했던 조선중앙통신 5국 2세포 기자들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김정일)를 따라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김정일 앞으로 보낸 것을 모범사례로 제시하며 ‘충성의 편지쓰기’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2003년 제2차 이라크 전쟁 개시와 2006년 후세인 체포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은 한참 후에야 주민들에게 이 소식을 공개했다. 일단 도 당책임비서 등 핵심간부들만 볼 수 있는 ‘참고신문’을 통해 이 사건을 전달 한 후 노동당 및 군 간부들에게 주민들의 동요를 철저히 차단할 것에 대한 사전교양을 가졌다. 북한 주민들은 사건 발생 일주일 후에야 이 소식을 간단히 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는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불량국가’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지목하던 시절이었다.


북한 군인들에게는 사건 발생 3개월 후 ‘이라크 전쟁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란 기록영화가 배포됐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탈북자 B씨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달러에 대한 유혹이 이라크 군인들을 무장 해제 시켰다. 우리 인민군은 미 제국주의 자들의 이러한 사탕발림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최고사령관(김정일) 동지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당분간 리비아발 민주화바람이 내부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며 한편, 일반 주민들의 우발적인 불만표출 행위가 소요사태로 확산되는 경우에 대한 준비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북한은 올해초부터 소요사태에 대한 진압장비를 수입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면서 “몇 해 전까지만해도 간부들이건 일반 주민들이건 ‘대중시위’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지만, 자스민 혁명이 카다피를 죽음으로 몰고 간것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그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만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카다피가 북한 간부층과 주민들 사이에서 매우 익숙한 외국 인사라는 점에서 후세인의 죽음보다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면서 “당장 오늘부터 대북라디오 방송들이 이 소식을 보도하게 되면 조만간 북한내부에 적지 않은 논란거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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