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경찰씨, 너무한 것 아닙니까?”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나. 우리가 무슨 지하투쟁이라도 하고 있는가?

우리 탈북자들은 대부분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보호’가 아니라, 감시와 통제로 바뀌고 있다. 지난 7월 남북장관급회담 때 워커힐호텔 앞에서 집회를 연 이후로 그렇다. 이제 북한대표단이 서울에 오면 으레 형사들이 전화하고 감시가 따른다.

나는 탈북자 모임 대표로, 15일 광화문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8.15 민족대축전 행사기간에 형사님들이 우리 탈북자들을 지나치게 밀착보호를 해주어 애를 먹었다. 이날 이순신동상 주변에서 진행된 보수단체행사에 참가한 다른 탈북자들도 관할 경찰서 형사들의 ‘친절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것을 신변보호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 판단 능력을 가진 성인을 보호한다 했을 때는 상대방이 그만큼 긴급한 상황에 처했거나 먼저 요청을 했을 때야 진정한 ‘보호’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보호는, 우리를 어린아이나 비(非)정상인으로 취급한 ‘무시행위’이거나 감시와 통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나는 그것을 분명 감시라고 느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집 앞에서 행사장소까지,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는지까지 확인하는 형사들의 잦은 전화에 부모님은 “네가 죄라도 짓고 다니냐”고 걱정한다.

나는 지금까지 경찰이나 국정원에 이러한 신변보호를 요구한 적이 없다.

북한에서 감시받던 생각나

북한에서 감시와 통제를 피해 자유를 찾아 나왔는데, 다시 이 땅에서 감시를 받자니 여기가 과연 대한민국이 맞냐는 생각이 든다.

나뿐이 아니다. 다른 탈북자 운동단체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나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 “오늘 행사에 참가하는가, 언제 나가는가” “지금 뭐 하고 있는가, 밥은 먹었는가” 등 수십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을 속삭이는 전화도 이렇게 걸어오면 귀찮아질 것이다.

대체로 탈북자들은 자신을 담당하는 형사와 불편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나도 실명(實名)을 밝히길 꺼린다. 집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 탈북자는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 형사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미안하다, 대통령 잘못 뽑아서 그러는데 어쩌겠냐, 이해해달라”고 형사가 말하길래 함께 웃었다는 그의 말에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다.

서너 명의 경찰이 ‘밀착 경호’를 했다는 탈북자도 있다. 정부의 탈북자 신변보호는 형사 한 사람이 탈북자 5~6명, 많게는 10여명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작스레 탈북자 한 사람을 서너 명의 경찰이 보호한다니, 남북장관급회담을 거치더니 탈북자도 ‘장관급’이 되었나? 요즘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탈북자들 사이에 떠도는 농담이다.

지나친 감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물음에 형사들의 대답도 여러가지다. “우린 몰라”라는 모르쇠형에서, “우리 입장도 생각해달라”는 애원형, “우린 시키는대로 할 뿐”이라는 변명파까지. 오히려 탈북자들이 형사들의 입지를 지켜주어야 할 처지라고 한다. 형사들이 하기 싫다는 일을 자꾸 시키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일까?

여행의 자유, 거주이전의 초보적인 자유도 없는 심각한 2중3중의 통제와 독재 속에서 살아온 우리 탈북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와 권리다.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도 안다. 그런데도 남한에서 계속 통제를 받다보니 마치 남한이 ‘독재국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물론 남한사회를 북한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유와 민주를 느끼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기반 위에 자율과 자제를 부탁해도 알아들을 수 있다. 제발 탈북자들을 어린아이 취급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철만(2000년 입국,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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