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석의 일기③] “친절한 경찰관”

임업장에서 그렇게 이틀을 지냈습니다. 임업장 사람들은 참으로 유쾌하고 다정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여차하면 이곳에 계속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한 기대로 끝났습니다.

“불쌍하지만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단다.”

우리들을 차에 태워온 사람이 미안한 듯이 말했습니다.
밤이 되자 우리들은 그 마을의 경찰 파출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은 파출소에서 자게 되었지만 북조선에 되돌아 가면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할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누구 하나 일어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파출소의 조선족 할아버지는 우리들이 지루하겠다며 비디오 테이프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비디오라는 것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럭저럭 파출소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이대로 북조선에 되돌려 보낼까 말까 하며 고민 중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부모가 없는 우리들을 북조선에 되돌려 보내면 제대로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짐작했습니다.

“야∼ 춘석아 장작 패는 것 좀 도와달라.”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왠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열심히 도와 드렸습니다. 희선이는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할머니와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금방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또, 계속 여기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미하게나마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어이 그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파출소에 와서 1개월 정도 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와 희선이를 앉혀놓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아침 북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으니까…”

할아버지는 경찰관이기 때문에 우리들을 이대로 놔두면 마을 사람들한테 본보기가 되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슬퍼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개월간 할아버지께서 정말로 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와 선희는 1개월 전과는 몰라보게 몸이 좋아지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할아버지를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의 이별이 더 괴로웠던 것입니다.

나의 운명을 저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사탕과 과자 그리고 일용품을 가득히 넣은 가방 하나와 돈 450원(한국돈 6만원상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북조선 측의 초소(국경을 경비하는 군인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야 된다. 이제는 또 여기에 오면 안돼.”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들은 계속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와 선희는 둘 다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The Daily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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