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요구에 어떠한 형태로든 타협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주장하는 방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며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를 계속 할 것인지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주장하는 일괄타결식 비핵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이 곧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 명의의 공식성명이 나온다는 것은 하노이 결렬 이후 대응방향에 대해 북한이 내부검토를 마무리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얼마 전 외곽매체를 통해 입장을 밝힌 적이 있지만, 최 부상의 공식 기자회견과 김 위원장의 공식성명 예고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입장 표명이다.
북미, 언론 통한 ‘밀당’ 본격화?
최선희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협상 태도에 대해 많은 비난을 한 것을 보면, 이번 기자회견은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잇따라 언론에 출연해 북한을 압박한 데 대한 대응차원으로 보인다. 볼턴과 비건, 폼페이오가 연속으로 출연해 북한에 빅딜식 일괄타결을 압박한 데 대해, “그럴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역시 언론을 통해 밝힌 것이다.
볼턴과 폼페이오를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북미) 두 정상간 개인적 관계가 여전히 좋고 케미가 훌륭하다”며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은 북한도 대화판을 깨는데 부담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성명에 협상 중단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담길지언정, 적어도 “이 시간부로 협상은 없다”는 파국 선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거친 수준의 밀당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갈등의 본질은 ‘영변 외 비핵화’에 대한 이견
하지만, 지금의 사태가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의 갈등이 비핵화 협상 내용에 대한 본질적인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이 깨진 이유, 또 그 이후 미국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영변 외 비핵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구였다.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카드로 내세운 북한에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영변 외의 비핵화에 대해서도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보이라”는 것이 미국이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요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상당기간의 숙고 끝에 내놓은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영변 외 비핵화’의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북한의 1차적 의견 정리가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의 상황이 위기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협상 상대인 미국이 북한을 달래며 협상하거나 북미협상의 ‘촉진자’임을 강조하는 우리 정부가 양쪽을 달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의 첫 반응은 일단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쪽이다. 하지만, 영변만 폐기하는 카드를 받을 수 없다며 하노이 회담장을 걸어나온 미국이 ‘영변 외 비핵화’를 여전히 거부하는 북한을 계속 달래가며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지만, 북한이 이렇게 비타협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쪽으로 1차적인 반응을 낸 것을 보면 우리 정부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최선희 부상은 평양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중재자가 아닌 행위자”라며 한국의 역할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북미가 서로 먼저 대화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더라도 각자의 주장을 고수하며 상대편이 움직이기만 바란다면 대화는 재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보면 서로의 언행이나 행동들로 인해 위기가 조금씩 상승하면서 전반적인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아직 향후 사태의 전개방향을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한반도에 위기를 알리는 전주곡이 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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