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만났던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 회동이 이뤄진 지 한 달이 지났다. 당시만 해도 남북미 정상 회동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많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기대는 많이 사그라진 상태다. 한일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북미 협상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다소 밀려나는 듯도 하다.
당장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의 유일한 합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판문점 회동 이후 2-3주 안에 실무협상을 갖기로 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협상은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당국자들이 7월 하순 비무장지대에서 만났고 북측이 미국에 “북미대화가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지만, 언제 실무협상이 열릴지는 아직 미정이다. 태국에서 열리는 ARF,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불참해 북미 외교장관 회담도 열릴 수 없게 됐다.
북, 한미군사훈련 이유 들며 북미 실무협상에 미온적
북한은 이 모든 지체의 원인으로 한미군사훈련을 꺼내들었다. 7월 16일 외무성대변인 명의로 “(한미군사훈련이) 현실화된다면 조미(북미)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명분으로도 한미훈련을 활용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남한을 겨냥하는 미사일 발사도 계속하고 있다. 한미훈련이 끝나는 8월 중순까지는 일체의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판문점 회동이 있을 당시부터 8월 한미군사훈련은 예정된 것이었기에, 북한이 한미훈련을 이유로 북미 실무협상을 지체시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부에서 관측하듯이 협상에 준비가 되지 않은 북한이 시간벌이를 위해 한미훈련을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협상을 준비한 뒤에 미국과 마주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정확한 의도는 8월 한미군사훈련이 끝난 뒤 9월쯤 가서야 확인되겠지만, 남북미 정상회동이라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이뤄지고 나서도 북미 실무협상조차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은 정치적 이벤트가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분단의 한가운데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장면은 TV를 통해 현장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것이었지만, 강렬한 이미지가 지나가고 난 뒤 남은 실체는 판문점 회동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정상 간의 만남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중요한 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하루 만에 회동이 결정돼 사전준비 없이 갑작스런 만남이 이뤄지고 만남의 결과물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톱–다운 방식의 한계
흔히 북미 정상 간의 톱-다운 방식이 작동했기 때문에 북미 간의 관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이나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정상 회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비핵화 협상에서의 교착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톱-다운 방식의 정치로 얼마나 이 국면을 더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은 기대를 가져보아야 한다. 8월 한미훈련이 끝나고 나면 9월쯤 어떤 식으로든 대화가 다시 시도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미 실무협상 혹은 고위급회담에서 어떤 진전이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지만, 남북미 정상이 만나고도 좀처럼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과연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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