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현지지도하면서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북한)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되는 말은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라는 부분이다. 남측과 얘기를 해보라고 한 만큼 조만간 우리 정부나 현대아산 측에 대화를 제안할 것으로 보이고, ‘협의’가 아닌 ‘합의’라는 표현을 쓴 만큼 우리 정부의 동의하에 일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리 정부 동의 안 하면 시설 철거 안 할까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에 동의하지 않으면 시설 철거는 이뤄지지 않을 것인가. 북한 매체들의 전체 보도 맥락을 보면 이렇게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김 위원장은 동행한 간부들에게 금강산 개발계획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금강산에 고성항 해안관광지구, 비로봉 등산관광지구, 해금강 해안공원지구, 체육문화지구를 꾸리며, 이에 따른 금강산관광지구 총개발계획을 먼저 작성심의하고 3-4단계로 갈라 연차별로 단계별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또, “고성항 해안관광지구, 비로봉 등산관광지구, 해금강 해안공원지구, 체육문화지구마다 현대적인 호텔과 여관, 빠넬(패널)숙소들을 건설하고 골프장도 세계적 수준에서 다시 잘 건설”하며, “고성항 해안관광지구에 항구 여객역을 건설하고 항주변을 봉쇄”할 것을 지시했다. “인접군에 관광비행장을 꾸리고 비행장으로부터 관광지구까지 관광전용열차 노선도 새로 건설”하며,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는 조건에서 스키장도 건설”하도록 하는 등, 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특색있게 개발하는 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금강산 개발 계획을 지시했다면, 이러한 지시를 무시한 채 시간을 마냥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측과 협의를 진행해보겠지만 남측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북한 일방적으로 남측 시설 철거와 새로운 관광지구 건설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금강산관광 재개 지체되자 불만
북한의 남측 시설 철거 선언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더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불만의 표현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고 합의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언제 관광이 재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와 관계없이 남한 독자적으로 관광 재개에 나서든지, 미국을 설득해서 제재를 완화시켜 금강산관광 재개의 발판을 마련하든지 하라는 압박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과 현대아산과의 합의를 부인하는 모양새까지 보이며 시설 철거와 금강산 독자 개발을 얘기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반증으로도 보인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금강산관광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관광 자체는 제재의 대상이 아니지만,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측 자재와 장비가 들어가서 시설을 전반적으로 개보수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제재에 걸릴 수 있고, 예전처럼 관광비가 거액으로 북한에 넘어간다면 이것 또한 유엔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 국제사회와의 교역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유엔 제재 위반을 감수하면서까지 금강산관광 재개에 나서기는 어렵다. 결국 비핵화 협상의 진전으로 금강산관광을 추진할 제재 완화의 여지가 생기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금강산관광을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냉철한 현실 인식 필요한 시기
정부는 남북 평화경제와 DMZ 국제평화지대화 등을 얘기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목표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지나쳐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있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갈수록 낙관적 전망보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 시기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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