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진 아이들 3부] 입양 장려 北, 그러나…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친부모가 찾으러와도 대책 내놓지 못해...북한식 사회주의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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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이야기

북한 평양에 위치한 고아원 모습. /사진=데일리NK

언니는 매일 아이가 있는 동네에 숨어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꽁꽁 싸두었던 아이가 어느 날 밖에 나와 있었다. 아이는 또 효심이와 모래바닥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남철이가 먼저 말했다.

“효심아, 나 어제 너무 무서웠어. 엄마가 내 머리를 잡고 물탱크 안에 집어넣고 때릴 때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어.”

“나도 그랬잖아. 엄마가 나도 숨 막히게 했잖아. 내 목을 조이고 꼬집고 했잖아. 무서웠어.”

두 아이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언니의 가슴을 쥐어뜯게 했다. 언니는 그 소리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 집 문을 두드리며 아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두 달 동안을 그 집 문 앞에서 뻗쳤다.

치열한 싸움, 비굴한 당 일꾼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2018.9.18.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언니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 당위원회를 찾아갔다. 시 당위원회 정문에서 접수하고 곧바로 조직비서에게 안내되었다. 시 당 조직비서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돌려줄 것을 애원했다. 그런데 시 당 조직비서의 대답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시 당 조직비서는 “이는 당에서 관심하는 문제라 함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이미 당에도 보고된 아이들이어서 함부로 돌려줄 수 없다. 남의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로 받아들이고 키우겠다는 그 정신이 얼마나 고마운가? 누구나 다 본받을 일이다. 그들이 아이를 내놓지 못하겠다는데 나라고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을 욕보일 수 없다”고 딱 잡아 말했다.

그때부터 언니는 시 당 청사 앞에서 시위하듯이 매일 조직비서 방 앞에 서 있었다. 아이를 돌려주지 못한다는 대답은 매번 같았지만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 한 주민이 남의 아이를 키워주는 좋은 일은 이미 정부에 등록이 되어있고, 당에서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것이 아니라 제도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데 유리하게 써먹었다. 당 기관들에서는 해마다 중앙당에 성과보고서를 올릴 때 이런 주민들의 이름을 선두에 올리고 자기들이 일을 잘한 공로로 이용했다.

이것은 또한 굉장히 선전화되었다. 중앙기관지인 노동신문이나 도기관지인 도신문의 1면에 띄우고 아름답고 고상한 품행을 지닌 주민들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이런 주민들에게 혜택도 많았다. 우선 배급이 없는 세월에 가족배급을 전부 무상으로 주고 현대적인 아파트까지 분양되었다.

남철이를 키우는 집에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대가로 새집을 분양 받았고, 배급을 꼬박꼬박 타먹었고, 입당을 못했던 아이들의 새아빠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으며, 해외노동자 진출까지 했다.

아이들을 데려가 키우는 대가는 대단했다. 아이들의 아빠는 러시아 벌목에 가서 많은 돈을 벌어왔다. 또한 이것을 미끼로 장인, 장모가 열차 장사를 하고 다녔는데 비사회주의 행위였지만 정부가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대가로 정부의 비호 밑에 부자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주민들의 손가락질이 대단했지만 오히려 더 기고만장했다.

언니는 매일같이 시 당 청사에 나가 아이를 돌려달라고 항의했다. 언니의 계속적인 항의가 계속되자 당 일군(일꾼)들 속에서는 “자기 아이를 돌려달라는데 돌려주는 게 맞지 않는가?” 하는 식의 비난도 나왔다.

이 일은 시내 주민들 속에까지 퍼져 주민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남의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결심이면 왜 제 새끼는 낳았나?” “제 새끼 안 낳았으면 곱게 봐줄 꼴이지만 제 새끼 둘씩이나 낳아가지고 남의 아이 안 돌려주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하는 여론이 마구 쏟아졌다.

더욱이 동네 주민들 속에서 남철이의 새엄마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해 여론이 더욱 나빴다.

사람들은 “조직비서가 말은 저렇게 해도 아이를 자기 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은 맞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언니는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철이가 사는 주변을 돌기만 했다.

언니가 시 당 청사주변에서 떠나지 못하고 주민들의 여론이 점점 더 나빠지자 어느 날 조직비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를 불렀다.

“친엄마가 아이를 돌려달라는데 주는 게 어떤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새엄마는 악을 쓰며 절대 아이들을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시 당에서 아이들을 돌려주게 하는 경우 중앙당에 신소하겠다고 악을 썼다. 시 당에서도 이 문제가 중앙당에까지 들어가면 일처리를 잘못한 것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철이네 옆집에서 사는 한 여인이 언니를 찾아왔다. 그 여인은 조용히 귀띔을 했다.

“애들을 천대하고 때리는 주제에 아이들을 거둔다는 것은 말도 안 되오. 당에도 찾아갈 필요 없이 몰래 아이를 도적질해서라도 데려가오. 잘못된 건 아니지 않소? 제 새끼 둘씩이나 낳은 여자가 남의 애들을 예쁘게 생각할리 없잖소? 남의 애 키울 생각이라면 둘째를 낳았겠소? 원래 애들을 데려올 때 애를 낳지 않겠다고 당에 맹세했는데 맹세는 개뿔이 되고 애를 둘씩이나 낳았소. 몰래 데려가오, 우리 아들을 시켜 역까지 바래줄 테니 그리하오.” 고마운 여인이었다.

그 여인의 덕에 언니는 끝내 아이를 도적질해 데리고 평양에 왔다. 아이를 데려오고 나니 겁도 나서 아이를 몇 달 동안 남의 집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아이를 데려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어대던 시 당에서도 아무 소식이 없었고 아이들의 새아빠, 새엄마에게서도 소식이 없었다.

난리가 난 것은 아이를 빼돌려 보내준 그 청년이 시 당에 불려간 것이었다. 아이를 빼돌리는 날 동네에서 누가 보고 신고한 것이었다. 그 청년은 제대되어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시 당에 불려가 비판서를 쓰고 6개월 후보당 생활을 더 하는 것으로 처벌받았다. 생모인 언니한테는 아무런 후환이 생기지 않았다. 시 당에서도 당연한 일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몇 해 후에 나는 평양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언니와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몰라보게 자란 남철이는 떠나갈 때 새엄마 집에서 다섯 살이었는데 벌써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에 진학했다. 남일이와 남철이, 그들은 언니와 더불어 그냥 평범한 한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훗날의 이야기


나는 훗날 시 당에 필사로 동원되었다가 우연하게 남철의 새엄마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컴퓨터가 없던 시기여서 모든 것을 필적으로 남겼다. 그때 당 간부들에게서 아이들을 미끼로 데려간 그 부부에 대한 얘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남철이와 함께 입양되었던 그 효심이라는 아이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효심이의 언니도 다른 집으로 입양되었는데, 어느 날 효심이가 있는 곳을 알고 동생을 찾아왔다. 그때 언니는 커서 군대에 나갔다가 1년 후에 휴가를 받고 동생을 찾아왔던 터였다. 부대에서는 효심이네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꼭 동생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넉넉한 휴가를 주어 보냈던 것이다. 그때 몇 년 만에 만난 언니에게 효심이가 울면서 새엄마를 고발했다.

새엄마가 때릴 때는 물탱크 안에 집어넣고 숨이 막히게 하고 마구 때린다고 말했고, 시도 때도 없이 구박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언니는 그대로 떠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중앙당에 신소편지를 보냈다.

신소편지를 접수한 중앙당에서 일꾼이 내려와서 효심이도 만나고 동네 주민들의 여론도 조사했다. 그리고 남철이네 집에도 찾아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증명되었다. 남철이의 새엄마, 새아빠는 더는 천사가 아니었고 세상의 쓰레기로 전락했다. 그들은 구역당과 시 당에 불려 다니며 아이들을 학대한 죄의 대가로 비판서를 쓰기도 했고, 주변 주민들에게서도 너절한 인간으로 낙인되었다. 변질된 충성은 이렇게 끝났다.

이것은 충성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사회주의 외피를 쓴 북한 사회의 쓰디 쓴 현실의 한 부분이다.

(끝)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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