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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 ‘무정’으로 유명한 춘원 이광수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납북되기 전 공산주의자로 전향을 종용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채 절필했다고 미국에 거주하는 춘원의 차녀 정화(74)씨가 밝혔다.
정화 씨는 사단법인 6.25전쟁남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가 8일 발간한 한국전쟁납북사건 사료집 제2권에 실린 구술 자료에서 “(1950년) 7월12일 피랍 전부터 인민군들이 와서 자수를 하라고 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아버님은 인민군으로부터 여러 가지 회유”을 받았으나 “6.25전쟁이 난 후에는 아무것도 안 쓰셨다”고 설명했다.
춘원의 납북 당시 상황과 관련 정화 씨는 “아주 젊은 인민군 3명 정도가 와서 자수를 하라면서 그 길로 트럭에 태워 종로경찰서로 연행했다”며 “언니 말로는 그 때 겨우 17살 정도밖에 안되는 군인에게 어머니가 막 큰절을 하면서 ‘잡아가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9월25일쯤인가 공산군 쪽에서 (춘원이 수감된)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차입을 받겠다고 해서 당시 (춘원이) 여름옷을 입고 계셨으니까 양복, 비타민을 넣었다”고 이씨는 회고하고 9.28수복 후 “9월29일 서대문형무소에 가보니 아버님 자취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듣기로 이미 7월에 평양으로 압송됐다는 것.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는 지난 2006년 제1차 자료집 발간 후 만 3년 만에 춘원의 납북 사건을 포함한 1천200쪽에 달하는 한국전쟁납북사건 사료집 제2권을 발간했다.
가족협의회는 이번 사료집 발간을 계기로 정부와 사회가 납북자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요구했다.
가족협회 김미영 연구실장은 “이번 사료집을 준비하며 ‘춘원 이광수의 사례’를 통해 유명했던 사람들의 납북과정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료집은 이 외에도 6·25전쟁 납북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중요자료들을 대거 수록했다. 사료집은 150쪽에 걸쳐 수록한 당시의 주요 신문 보도를 거론하면서 납북사건이 대부분 왜곡됐을 뿐만 아니라 납북민간인 문제 해결에 정부의 무능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협회 이미일 이사장은 사료집에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남북한관계사료집 제5권에서 발췌한 북미간 휴전회담 회의록(51년12월11일-52년5월)에 기록된 부분을 보여주며 “미국이 국내 여론때문에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남한 민간인 납북자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이사장은 이러한 사실이 “휴전협정 당시 유엔은 ‘정치적 이유’로 납북된 정치범이 2만명 정도 있다고 추산했으면서도 협상장에서는 전혀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과 외국 민간인 55명은 송환했으면서 대한민국의 민간인 송환은 포기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고 밝혔다.
특히 이 이사장은 “휴전회담이 ‘정치회담’이 아니라 군사회담이라고 주장한 북한측의 발언에 반박하지 못한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은 2006년 사실적 자료들을 다룬 1권이 출간됐고, 이번에 납북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과정과 납북 가족들의 증언을 모아 제 2권이 출간됐다.
단체는 이달 중으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한국전쟁 납북자 문제를 인정하는 편지를 전달하고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를 요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