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석의 일기①] “북조선의 추억”

▲ 오빠 춘석이 그린 그림.

중국에 와서는 될 수 있는 한 북조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괴로웠던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려고 할 때마다 될 수 있는 대로 즐거웠던 일들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북조선에서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분명 즐거웠던 추억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내가 인민학교 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1990년 9월(북조선은 9월이 새 학기다) 나는 새로 맞춘 제복을 입고 ‘신입생을 열열히 환영한다’라고 쓰여진 교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상급생들은 양측에 나란히 서서 우리들에게 색종이로 만든 꽃 테이프를 둘러 주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같은 동급생 중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문자를 익혔기 때문에 학급위원으로 선발 되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생겨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들판을 뛰놀기도 하고 낚시질도 하며 놀았습니다.

2학년 때는 ‘학습과 조직생활의 모범학생’으로서 군(郡)에서 표창장을 받았고 ‘조선소년단’의 단원도 되었습니다. 인민군(북조선에서 군대를 부르는 말)의 군관(장교)으로 계시는 아버지는 내가 자랑스러워서 군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언제나 나와 희선이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군대에서 배급을 주는 강냉이로 만든 엿인데,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즐거웠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희선이가 썼기 때문에 더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북조선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장례식 때의 광경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다가 나나 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고통스럽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었을까요?

지금도 그런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중국에 와서 배는 고프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도 정말 안심하고 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친절하게 해주셔서 이제는 안심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근심걱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또 이전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이런 것만 쓰다 보면 기분이 점점 멍멍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하고 선희가 쓴 뒤를 이어 쓰려고 합니다.

The DailyNK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