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축구선수 출신] “선수되어 평양 가면 가문의 영광”

▲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는 북한 선수들(연합)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열리면서 한반도가 축구 열기로 뜨겁다. 이번 최종예선에는 한국뿐 아니라 북한 대표팀까지 진출해 관심은 두 배가 됐다. 국민들은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남과 북이 동반 진출해 다시 한번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재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12년만에 국제무대에 돌아온 북한 대표팀이 국제경험은 부족하지만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북한 축구 운영 시스템과 저변(底邊)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또한 김일성 경기장에서 축구를 관람하는 평양시민의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자 북한 주민들이 평소 축구를 어떻게 즐기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데일리엔케이>는 전직 북한 축구선수 출신인 서영석(고려대 재학) 씨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 축구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서씨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어린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어 해외에 나가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한다.

북한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기술과 스피드가 뛰어난 팀

-지난 바레인 전에서 북한 선수들이 선전했지만 스코어 1-2로 분패했다. 생각보다 공격력이 뛰어난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과 선수들이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 공격력은 대단했다. 경기를 지배했다. 그러나 수비는 문제가 많았다. 역습 두 번에 골을 먹고 그대로 무너졌다. 수비전술이 부재한 것 같았다. 선수 개개인의 기술이나 투지는 좋았다. 국제경기 경험 부족과 전술부재가 패인으로 보인다. 일본전에서 90분 내내 체력을 앞세워 일본을 몰아붙였는데 이번에는 잘 못뛰는 모습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비보완이 시급하다.

-지난 바레인 전을 관람하는 평양시민들이 관중석 앞줄에 있는 여성의 지시로 물결응원도 펼쳤다. 북한의 평소 축구 응원문화는 어떤가?

외국 방송에서 오는데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 않겠는가. 한국처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문화는 없다. 경기를 지켜보다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골에어리어 근처로 공격해 들어가면 “와” 하면서 함성을 지르는 정도다. 지난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스아드 대회 북한 응원단처럼 딱딱이를 치면서 “우리팀 이겨라”는 응원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에 위치한 김일성경기장.(NK조선)

-바레인 전이 열린 김일성 경기장에는 7만 관중이 운집했다. 경기 관람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 수 있는가?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리는 시합은 평양시민들만 볼 수 있다. 지방에서는 갈 수 없다. 친척이 결혼이나 상을 당해도 평양에 못가는데 축구 때문에 통행증 승인번호를 내주는 게 말이 되는가. 평양시민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평양 내에 있는 공장이나 기업소, 인민반 별로 일정한 숫자를 배분해서 구매권을 나눠준다.

구매권(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증명)을 가져야 경기장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수가 있다. 입장권보다 구매권이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은 스포츠 중에서 축구를 가장 좋아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전국적인 축구열풍이 불기도 한다. 북한에서 축구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북한 사람들도 스포츠 중에서 축구를 제일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구 경기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한국처럼 붐이 일정도는 아니다.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를 1년에 한두 번 방송해준다. 그것도 과거에는 이긴 것만 내보냈다. 그러니 선수 파악도 안 되고 경기에 대한 지식도 없다.

국내 축구경기 1년에 5-6회 중계

-국내 축구팀 간 경기도 중계해주는가?

평양 중앙체육단에 소속되어 있는 팀끼리 경기하는 것을 TV로 중계해준다. 중앙체육단에는 한국 프로팀처럼 압록강, 4.25, 기관차 같은 1부리그 팀들이 14개 정도 있다. 이런 팀 간 경기는 1년에 5-6회 정도 중계한다. 2, 3부 리그에도 많은 팀들이 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평소 북한 주민들은 축구를 많이 하는가?

북한 사람들은 축구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는 북한 사람들 축구실력이 남한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은 것 같다. 남한 사람들은 축구실력보다 축구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 같다. 직장에는 ‘겸직축구단’이라는 직장 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축구를 많이 즐긴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곳은 다른 도(道)에 비해 체육기자재 공급이 좋지 못했다. 공이 없어서 축구를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인민학교(현재 소학교) 체육선생으로 있을 때는 학교에 공이 없어서 평양에 아는 축구선수에게 부탁해 공을 얻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축구선수에 대한 대우가 어떤가?

북한에서 축구선수가 되면 일반 노동자들보다 월급도 높고 대우가 좋다. 일단 중앙체육단에 가면 평양에서 생활할 수 있지 않은가. 북한 사람들에게 평양에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축구선수로 중앙체육단에 소속되면 집안의 경사다.

대표선수가 되면 외국에도 나갈 수 있다. 합법적으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돼서 외국에 나가보는 것이 소원이다.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인민체육인, 공훈체육인, 체육명수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금메달 따면 받는 대우와 비슷하다.

축구선수, 소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육성

-축구선수는 어떻게 육성하는가?

소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면서 축구선수로 지원하면 된다. 특별히 잘하는 아이들은 소학교에서부터 엘리트로 육성한다. 대개 시, 군 이상 지역에서는 소학교에서 전문화 축구반을 운영하고 있다. 매 학년에서 한 학급을 축구반으로 지명한다.

이 학급은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축구 지도교사가 와서 축구 연습을 한다. 다른 반에서 축구를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축구반으로 불러오고, 축구반에서 흥미가 없는 학생은 다른 반으로 이동한다.

▲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5.1경기장. 능라도 경기장이라고도 한다.(NK조선)

축구를 계속 하고 싶은 학생들은 중학교에 진한 한 후에 과외체육학교(구 체육구락부)에 다닌다. 오전에는 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그 곳에 가서 축구를 한다. 4.15나 2.16 같은 기념일에 도(道) 대항 시합을 하는데 이곳에 도 대표 감독(지도원)이 와서 지켜보고 잘하는 학생을 도 대표로 선발한다.

이 도 대표들이 전국 규모의 시합에 나간다. 전국에서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서 잘하는 학생들을 졸업할 때쯤 중앙체육단으로 데려간다.

-축구선수들은 나중에 어떤 진로를 갖게 되는가.

축구 지도자, 학교 체육 선생, 체육 관련 일을 하게 된다.

-김일성 경기장에서 직접 시합을 해본 적이 있는가?

김일성 경기장에서는 해본 적이 없다. 여기는 보통 전국대회 결승전만 한다.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시합은 못해봤다. 보통 능라도 경기장이나 양각도 경기장에서 예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경기장 조건은 능라도 경기장(5.1 경기장)이나 양각도 경기장이 훨씬 낫다.

여기는 천연잔디이기 때문에 시합하기가 매우 좋다. 김일성 경기장은 인조잔디 구장이라 부상당할 위험이 크다. 김일성 경기장에서 시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경기장이 오래되긴 했지만 정말 크고 위엄이 있었다. (김일성 경기장 관람석은 의자를 놓으면 6만 명을, 의자를 떼면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잉글랜드 8강 월드컵 신화 주역 ‘신형규’ 수용소 행

-그러면 이번 월드컵 예선 경기를 천연잔디에서 하지 않고 인조잔디 경기장에서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는 모르겠다. 겨울이라 잔디 관리가 잘 안 돼서 그럴 수도 있다. 외국 선수들이 인조잔디에 적응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

-축구선수 시절 선망하던 선수가 있었나?

북한 대표팀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같이 축구를 하던 동료들은 그 당시 선수들을 신화처럼 이야기했다. 박두익, 신형규 이런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하시던 탄광에 신형규라는 사람이 혁명화 교육을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가 영국 호텔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이 탄광에 오셔서 ‘생기령 광산 겸직축구단’ 선수로 뛰었는데 정말 실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워낙 빠르고 기술이 좋아서 ‘기계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월드컵에 나가서 8강을 이룬 실력을 뽐냈으니 탄광촌에서 얼마나 인기가 좋았겠는가? 아버지에게서 그 분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중에 들리는 말에는 혁명화 사업을 마치고 평양으로 복귀했다가 “내가 없으면 조선 축구가 안 된다”는 말을 해서 잘못됐다(수용소 행)는 이야기를 들었다.

-탈북자들은 북한 대표팀 경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모두들 열심히 응원할 것이다. 우리 조국인데 응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남북 모두가 잘해서 함께 독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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