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본 한반도..대결과 화해의 역사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한과 북한 사이에 사상 첫 축구 A매치가 벌어진 이 대회에서 남북은 공동 우승을 차지한다.


남북한 선수들이 시상대에 함께 선 역사적 순간. 북한 선수들이 시상대의 남한 선수들을 밀쳐내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인 셈이다.


이 같은 해프닝은 냉전의 시대였던 1970년대였던 까닭에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간혹 축구는 정치 상황을 대신 보여준다. 축구 때문에 국가 간 분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축구가 국민을 단결시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처음으로 남북한이 동반 진출한 남아공 월드컵이 개막한 가운데 MBC ‘통일전망대’는 14일 낮 1시35분 ‘남과 북의 그라운드’라는 부제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1978년에야 남북한 사이에 A매치 첫 경기가 열렸던 것은 남북한의 정치 상황에서 비롯됐다.


한국전쟁 이후 이념과 체제 경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좀처럼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이 같은 상황이 축구장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남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예선전에 벌금을 내면서까지 불참을 했고 북한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진출하자 한국 정부는 북한을 누르기 위해 중앙정보부의 주도 아래 ‘양지팀’을 창단했다. 양지팀은 당시까지 유래가 없었던 105일 간의 유럽 전지훈련 길에 오른다. 국가가 군대처럼 축구팀을 관리하던 시절이었다.


그라운드에 남북한 해빙무드가 시작된 것은 1988년 7.7선언 이후의 일이었다. 1991년 세계 청소년대회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했고 1990년에는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열렸으며 1999년에는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도 개최됐다.


2006년 ‘조선’ 국적의 재일동포 안영학이 남한 프로팀에서 뛰게 된 것은 ‘혁명’으로 불릴 만한 변화였다. 대결의 시대가 가고 공영을 모색하는 단계가 온 것이다. 2008~2009년 중국 쿤밍에서는 남북 유소년 합동 전지훈련이 열리기도 했다.


제작진은 “천안함 침몰로 남북관계가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동반진출을 했다”며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남아공의 그라운드에서 어떤 역사를 이뤄낼까 기대하며 대결과 화해 속에 변화한 남북한 축구의 역사를 살펴봤다”고 밝혔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