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 “언제 북측에 보복당할까 공포속…”

“북한에서 탈출한 후에도 언제 북측으로부터 보복당하지 않을까 공포 속에 살고 있어요.”

1978년 납북됐다가 1986년 극적으로 탈출한 원로 배우 최은희(83)가 13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자신의 영화인생과 납북생활, 고(故) 신상옥 감독과의 사랑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이혼하고 1978년 1월 안양예술학교 이사장으로 지내던 시절 홍콩으로부터 자매결연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더 넓은 곳에서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 혼자 떠났다”며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함정이었다. 납북된 후 6개월 동안은 너무 놀라 밥을 못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의 생활이 생각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은 존경하고 좋아하는 여배우에 대한 예우를 각별하게 신경 썼고 ‘최 선생’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면서 “또 생일날에는 집으로 직접 초대해 부인과 아들 김정남을 소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늘 옆에 사람이 붙어 감시하고, 가족들도 없이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시간들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때로는 대동강가에 나가서 남한에 두고 온 아이들 이름, 동료 이름 등 생각나는 이름들을 부르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화초를 가꾸고, 집 앞의 땅을 일구어 감자나 콩 등을 심기도 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며 기다린 끝에 1983년 김정일이 베푸는 연회에서 회색양복을 입은 신상옥 감독과 재회했습니다.”

북에서 신 감독과 재회한 그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불가사리’ 등 17편의 영화를 같이 만들었고, 영화 ‘소금’으로는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86년 3월 베를린영화제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최은희와 신 감독은 일본 기자의 도움으로 택시를 타고 미 대사관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최은희는 “차가 막혀 잠시 선 동안 택시에서 내려 미 대사관으로 달려가 겨우 탈출했다”면서 “탈출한 후에도 언제 북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도 ‘혹시나’ 하고 가슴을 졸이게 된다”며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은희는 이와 함께 경기도 광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로 영화계에 데뷔하기까지의 과정과 너무 힘든 생활에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또한 영화 동지이자 사랑인 신 감독과의 질긴 인연에 대해서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신 감독과는 한국전쟁 중 피난처인 부산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 당시에는 수더분하고 순박해 보이는 유능한 신인감독으로만 여겼는데, 연습 도중 내가 쓰러졌을 때 업고 병원으로 뛰어간 사람이 신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18세 때 촬영 기사와 결혼했지만 가난과 폭력 때문에 이혼한 상태였던 그는 “‘우리 평생 영화를 같이 합시다’라는 신 감독의 말만 믿고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고 1954년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감독과의 결혼도 평탄하지 않았다.

“같이 영화를 만들자는 그 말에 후배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고 버텼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결국 1975년 신 감독과 이혼을 했어요. 그렇게 헤어진 후 북한에서 다시 부부의 연을 맺었어요. 제가 납북되고 6개월 뒤에 신 감독이 최은희를 찾겠다며 홍콩으로 갔는데 거기서 그도 북한으로 납치됐어요. 연회에서 만난 신 감독이 핼쑥하게 마르고 머리도 하얗게 센 것을 보고 안쓰러웠어요. 영화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절 찾겠다고 나섰다가 납북된 것을 보고 미웠던 마음이 봄눈 녹듯 사라져 다시 부부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최은희는 “지금도 내게 어울리는 역할이 생긴다면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여배우로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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