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돈·여자 문제로 김정은 신뢰 잃어 좌천”



▲6월 19일 북한 노동신문이 전한 ‘김정일 당 사업 시작 50주년 중앙보고대회’ 주석단 모습. 올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 때만 해도 김정은 오른쪽에 최룡해(당시 군 총정치국장)가 앉았으나 이번 대회에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앉았다. 반면 최룡해는 왼쪽 다섯번째(빨간 원)에 앉아 서열이 밀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김정은 시대 2인자로 급부상했던 최룡해 전(前) 인민군(軍) 총정치국장이 갑작스레 당(黨) 비서로 좌천된 것은 비자금과 여자 문제 등 부화방탕한 생활로 김정은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9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돈과 여자문제가 복잡한 최룡해가 90년대 말부터 뇌물로 쓰기 위해 1000만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중국은행에 예치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면서 “김정은은 이런 최룡해를 믿지 못한 데다 군부에서 확보한 자신의 비자금을 전담 관리하도록 황병서로 교체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최룡해(1950년생)는 황해남도 신천군 출생으로 아버지가 최현 전(前) 인민무력부장이다. 최룡해는 군 경력은 없었으나, 김정은 후계 작업이 공식화된 2010년에 인민군 대장, 당중앙위 비서, 당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위 위원, 당중앙군사위 위원 등 초고속 승진했다. 

특히 2012년 인민군 차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군 최고직책이라고 할 수 있는 총정치국장에 올랐고, 지난해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성택 처형 이후 불과 6개월 만인 올해 4월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김정은 수행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급기야 총정치국장에서 당 비서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좌천을 두고 김일성 보다 최룡해 아버지인 최현이 항일빨치산 활동의 주력이었다는 점에서 ‘백두혈통’을 내세우려는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최룡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소식통은 “빨치산 혁명이라는 지지 기반이 확실한 최룡해를 권력 핵심에 두는 것을 가만히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최룡해의 세력이 커지면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군부 내 조직, 사상, 인사 등을 통제하는 총정치국장에 최룡해 대신 자신과 오랜 친분이 있는 황병서를 그 자리에 앉혔다. 소식통은 “김정은은 올해 3월 초 자신의 생모인 고영희와 각별했던 황병서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주석궁으로 불러 최룡해 처리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최룡해의 대응에 대해 소식통은 “4월 경 당뇨 등 질병을 핑계로 입원하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전략을 구사했다”면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원홍을 찾아가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당 비서직을 수행하고 있는 최룡해와 군 핵심요직을 꿰찬 황병서가 김정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황병서는 최룡해 경질 후 측근들과 술을 하면서 ‘최룡해를 잘 감시해라’ ‘만약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할 것’ 등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북한 최고 간부들 간에 권력 다툼이 심해지고 김정은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 이후 공포정치를 본격화하는 김정은이 인사 교체 부분에서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

소식통은 “군부 원로들을 등에 업은 최룡해와 당 조직부를 대표하는 황병서가 은밀히 권력 투쟁을 전개 중”이라면서 “황병서에게 권력이 집중될 경우에도 장성택처럼 결국에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에 줄을 대야 목숨을 부지할지 모르겠다’는 푸념과 함께 김정은에 대한 원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한편 최룡해는 1986년 사로청(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장에 올라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위원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1996년 사로청 개편에 따라 청년동맹 1비서를 맡았으나, 부화방탕한 생활이 보위사령부에 포착되면서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다. 

또한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는 군 경력이 없는 그가 총정치국장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김정은에게 ‘아첨’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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