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암초로 부각된 BDA 조사

한국시간으로 작년 9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마카오에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BDA)를 통해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어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한다는 미국 재무부의 발표가 있었다.

같은 시각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4차 6자회담이 한창이었다.

관련국 간 이견이 어느 때보다 좁혀진 상태여서인지 회담장 주변은 결과 도출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고 태평양 건너 미국 재무부의 발표에 신경을 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사흘 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값진 성과로 평가된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북핵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던 미국의 BDA에 대한 조치는 북한계좌 동결로 이어져 북한이 작년 11월 열린 제5차 6자회담에서 돌연 미국의 이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슈로 부각됐고 이후 9.19 공동성명 이행은 물론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핵심 이유가 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BDA에 대한 조치를 ‘금융제재’로 규정하고 이는 북미 평화 공존과 관계정상화를 약속한 9.19 공동성명을 뒤엎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BDA 계좌동결 조치를 해제해야 6자회담 복귀는 물론 9.19 공동성명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BDA 문제는 법적인 조치로 6자회담과는 별개”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위폐와 마약 등 불법행위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북한은 BDA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양자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지난 4월 일본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 만나자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시했고 6월1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양자대화 제의는 미국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이 BDA 동결조치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어 대북 금융제재 행보를 더욱 빠르게 했다.

BDA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는 북한의 혈맹인 중국이 중국은행(BOC) 마카오 지점내 북한 계좌를 동결하게 만들었고 베트남과 몽골, 싱가포르, 홍콩 등 북한과 거래하거나 거래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의 은행들로 확산됐다.

미국은 지난 7월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이 채택되자 북한이 개입된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자금의 흐름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 작업을 총괄하는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부 차관은 지난 9일 “대북 제재가 실질적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으며 진짜 목표는 북한의 변화를 보는 것”이라고 말해 금융제재의 칼끝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북한도 9.19 공동성명이 이행될 때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포기하면서 BDA에 묶인 2천400만 달러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BDA 문제를 경제보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BDA 문제를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버리지 않았다는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는 관측과 함께 BDA에 묶인 돈이 북한 최고위층의 통치 자금과 연관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BDA 문제는 그 조치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다.

다행스럽게도 1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BDA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 입장이 다소 누그러진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6자회담 재개 및 진전을 위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식’을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BDA 문제를 비롯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대북 경제원조, 북미 관계 개선 등 쟁점사안들을 ‘패키지’로 함께 다뤄보자는 것이다.

미국이 엄격한 법집행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는 BDA 문제를 ‘패키지’에 넣는데 합의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유연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미국이 BDA 문제에 대해 얼마나 양보할 지, 또 6자회담 참여의 선결조건으로 금융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해 온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또 다른 시도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출구가 보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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