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자회담 재개’ 입 맞춘 北中의 속내는?

바야흐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남북도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실무접촉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였다. 며칠 전 이산가족 상봉 계획이 일방적으로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주변국 소원대로 북한의 핵 문제는 6자회담으로 해결 가능하며 북한은 점진적 개방으로 중국과 같은 길로 나아갈 것인가. 지난 20년간 북한의 행보를 어떻게 분석해 향후 행보를 예측할 수 있을까. 근거가 될만한 이론적 토대는 무엇일까.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반관반민 6자회담 10주년 기념 토론회는 북중의 6자회담 부활 염원이 담긴 결정체다. 왜 이토록 중국과 북한은 입을 맞춘 듯 6자회담에 다시 올인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걸까.


마침 이 회담에 다녀온 문정인 교수의 최근 기고에 따르면, 중국 측이 제기한 이슈는 크게 세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 강조, 둘째 6자회담 조기 재개, 셋째 미국의 부분 책임론 등이다. 세 번째는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선(先) 신뢰조치 기준을 낮추어 일단 회담에 임하라는 주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선 가시적 비핵화 조치’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북한의 반응이다. 이미 폐기했던 한반도 비핵화 ‘유훈론’을 내세우며 기존의 ‘조건부 비핵화’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작년 2월 29일, 북한 외무성과 미 국무부 대변인 발표의 차이만큼이나 견해가 달랐던 2·29북미 합의문 이후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미북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미국에선 더 이상은 속을 수 없다는 경계심이 팽배해졌다. 
 
“6자회담의 재개와 제도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를 일괄 타결하여 중국의 외교적 주도권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는 문 교수의 분석은 언제나 정책 현실에 희망을 덧대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다. 중국은 왜 새삼 지금 와서 6자회담에 연연하는 걸까? 분명 이번 10주년 기념 회의를 앞두고 북한과 사전에 입을 맞췄을 것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은 중국이 거의 자기 입맛대로 쓸 수 있는 유일한 리베로 카드란 점이 한 몫 했다.
 
미국은 어떤 입장일까? ‘한번만 더 속아주는 셈치고 테이블로 나갈까’와 ‘더 이상은 속지 않겠어’ 사이에 놓여 있다. 변수는 미국이 북한의 핵을 어떤 수준으로 인식하느냐다. 더욱이 전자로 선뜻 나아가기엔 현재 미국이 처한 외교과제가 너무 산적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시간은 미국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선 미국이 덥석 회담 재개 카드를 받을 리 없다. 그걸 아는 중국이 북한으로 넘어온 ‘신뢰조치 선행’이라는 미국이 던진 공을 자기들이 대신 받아 미국에 한번 더 넘기는 모양새가 이번 기념회의였다.
 
한반도 비핵화란 ‘공동선’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북한마저 필요하면 이 구호를 들고 나오지 않는가. 문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에 이르는 길을 ‘관리’하느냐다. 중국이 시작엔 얼결에 의장국이 됐으나 이젠 선한 사마리아인을 자청하고 나선다.


중국이 북핵의 관리자 지위를 유지한다면 그것으로 대미-대한-대일 압박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는데 수월해진다.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이익이 남는 장사란 의미다. 북한의 핵 추구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r)와도 유사하다. 관련국들로부터의 억지보상이 북한에게는 곧 거저 얻은 지대수입과도 같은 것이다. 중국은 이 지대비용의 상승을 막기 위해 6자 회담국이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하다는 계산은 진작에 끝냈을 것이다.


“이익집단으로 가득 찬 사회는 먼저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유리그릇 상점과도 같은데, 이때는 가져가는 사람보다 깨지는 것이 더 많은 법”이라는 집단행동 이론의 선구자 올슨(M.Olson)의 비유처럼, 이제까지의 6자회담은 정치적 허울뿐인 개별국의 뒤엉킨 이해관계로 깨진 그릇이 더 많았고, 앞으로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뉘앙스가 미국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다.


그렇다면 중국 참석자가 전했다는 대로 향후 6자회담 향배는 한국의 외교적 선택에 달려있을까? 문 교수의 희망대로 한국이 ‘외교적 상상력과 담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럴 기회가 열릴까? 중국측 인사가 고백했다는 한국 역할론은, 그러나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주문과 다름 아니다.


말로는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견해라지만, 결국 중국과 북한이 원하는 것은 오직 미국이 테이블로 나와 협상을 다시 하는 것일 뿐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을 상대로 한국이 차지할 자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현실은 바람과 당위가 아니라 힘의 크기대로 흘러간다는 것이 현실주의의 근본 철학이다. 비핵화라는 이상적 목표는 (군사와 경제라는) 힘의 뒷받침 없이는 세워질 수조차 없다는 것이 국제 관계의 냉엄한 실존적 현상이다. 중국의 6자회담 재개론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어떤 사건과 계기가 잠들어 버린 6자회담을 깨우는 분수령이 될 것인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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