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와병 1년> 초조감 실린 대내외 전략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은 북한 지도부에 ‘초조감’을 불어넣으며 이것이 지난 1년간 대내외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북한은 수령을 꼭지점으로 당과 군, 대중으로 이어지는 유일지배체제를 반세기 넘게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체제의 ‘뇌수’인 김 위원장의 와병은 북한의 지배엘리트층에 위기감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김 위원장으로의 권력 승계는 김 주석의 안정된 리더십 속에 20여년이라는 준비.정착기간을 거친 데 반해 지난해 8월 중순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후유증이 남은 김 위원장의 모습은 북한 지도부가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에 준비가 돼 있지 않은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내적으로 북한 지도부의 최우선적인 선택은 후계구도의 구축.

김 위원장의 와병기간 국정을 대리운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주도로 김 위원장의 삼남인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본격적인 후계체제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은 그 일환으로 특히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국방업무를 총괄하는 기구로부터 국정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최고기구로 탈바꿈 시키고 국방위원에 공안기관 책임자까지 포함시켰다.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사후 후계체제의 유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작년 정권수립 60주년인 9.9절 기념 열병식 행사에 김 위원장이 불참함으로써 그의 와병설이 북한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퍼지자 북한은 체제균열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 전반을 옥죄는 조치도 함께 벌였다.

재기한 김정일 위원장은 작년 말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제창했고, 그 맥락에서 지난 4월 하순부터는 주민들을 ‘150일 전투’로 내몰고 있다.

김 위원장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찾아 강성대국 건설 목표 해인 2012년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주문한 것은 김 위원장 자신의 초조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 따른 ‘150일 전투’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실종된 미래에 대한 낙관과 체제에 대한 신심을 되살려 보려는 것인 동시에 고립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개발 전략인 동원형 경제발전을 위해 주민들에 대한 고강도 통제를 가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북한 지도부의 초조감은 대외적으론 외부세력의 체제간섭을 배제하고 체제안보를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의 과시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이 쓰러졌던 지난해 북한의 대외적 환경은 가장 중요한 두가지 관계에서 2000년대 들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남한에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된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남북간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북한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다.

대미관계에서도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기는 했지만 검증문제에 발목이 잡혀 임기말의 부시행정부와 북한간 핵협상은 교착됐고, 올해초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우선과제에서 북한은 미국의 경제난과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밀려나 있었다.

이 같은 국제적 환경 속에서 김 위원장까지 쓰러지자 북한의 지도부는 대외 정책에서도 초조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체제안보 문제가 급선무로 떠오르자 정책결정 과정에 군부의 입김이 대폭 강화된 가운데 북한은 최대 우방인 중국의 만류도 뿌리치고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제2차 핵실험 등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 자신들의 `억지력’을 최대한 과시했다.

종래 한 가지 카드를 쓴 뒤 국제사회의 반응에 따라 또 한 가지 카드를 빼들던 것과 다른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우선 김 위원장의 와병으로 불거진 체제 불안을 반영, 외부의 간섭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려는 뜻으로 읽혔다.

이와 함께 핵과 미사일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북한문제’들의 심각성을 한꺼번에 의제화함으로써 이들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협상의 시급성에 국제사회의 눈을 돌리게 하려는 뜻도 담겼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그 어느때보다 긴밀한 협력체제 속에 강도높은 대북 제재로 대응하고 나섰고,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대북제재에 동참함으로써 북한은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나서 미국 여기자 2명을 인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정상회담에 준하는 예우를 갖춰 클린턴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여기자들을 석방한 것은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김 위원장이 이러한 국면의 전환을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면담에서 핵, 미사일 문제와 북미관계 등 다양한 현안들의 해결을 위해 일정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언질을 줬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또 130일 넘게 억류해 온 남측 근로자 유모씨를 남한 정부와 물밑교섭을 통해 이번주 석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유씨가 석방되면 꼬여만 가던 남북관계 역시 전환을 위한 숨통이 트일 수 있어 북미관계와 함께 남북관계가 재개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 속에서 현재의 제재국면을 수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억류했던 미국 여기자들과 남측 근로자의 석방을 통해 공세적으로 타개해 나가려는 것 같다”며 “앞으로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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