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환 공산권 ‘피라미드 사기’ 극심, 북한은?

▲ 내전 당시 알바니아 주민들- CNN

1994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하철을 타려고 토큰을 사려는데, 토큰 파는 아주머니가 “오늘은 무료”라고 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MMM이라는 회사에서 오늘은 사람들이 모두 무료로 탈 수 있도록 지하철 본부에 엄청난 돈을 냈다. 사업이 잘 되고 돈이 많은 회사니까 이렇게 비싼 광고까지 하는구먼” 하며 이 ‘이상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소련은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하고 몇 년이 지난 시기였다.

당시 필자는 해외에서 MMM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회사는 ‘투자신탁사’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광고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없던 광고의 부활이 바로 MMM의 TV 상업광고부터 시작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젊고 유능한 감독이 만든 이 상업광고를 지금도 기억한다. 광고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MMM 주식을 갖고 있으면 나날이 부유해진다’는 것이었다.

1993-94년에 MMM의 주식은 매달 2배로 뛰었다. 물론 시장경제에 경험이 있는 서구사람들이라면 이같은 고속성장을 한번쯤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체제전환된 러시아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안정된 주식회사의 경우, 주가가 어느 정도로 높아져야 정상인지 도통 알 수 없었던 것이다. MMM 사장인 마브러디(Mavrodi)란 사람은 ‘투자의 성공비밀을 잘 알아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MMM은 또 하나의 피라미드식 사기극이었다. 러시아에서 1991년부터 알려진 이러한 사기는 광고를 통해 투자자를 모으고 그들의 돈으로 이전에 피라미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큰 배당금을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또 TV에 계속 광고를 내고 신규 투자자를 모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오지 못하는 때가 생긴다. 이 순간 피라미드식 사기극을 ‘경영한’ 사람들은 도망가고 ‘투자신탁주식회사’는 하루 아침에 무너진다.

MMM 경우, 결정적 순간이 1994년 여름에 찾아왔다. 당시 사기 광고를 믿고 돈을 맡긴 사람들이 무려 5천만 명이 넘었다. 한국의 인구보다도 많았다. 마브러디 사장이 해외로 도망가자 투자자들은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다. 화가 난 투자자들은 몇 개월 동안 치열한 데모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중 40-50명은 모든 돈을 날리고 자살했다.

MMM 사건은 규모가 제일 큰 사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와 아주 비슷한 사건이 당시 러시아 사회에 적지 않았다.

셀렌가(Selenga) 신탁사 사건은 2백50만 명, 호퍼(Hoper) 신탁사 사건에는 1백50만 명이 돈을 날렸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1990년대 초 러시아의 피라미드 사기 때문에 전 국민이 날린 돈이 러시아의 1년치 국가예산과 일치했다.

피라미드 사기로 알바니아는 내전 발발

그러면 러시아에서만 유독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구 공산권에서 피라미드 투자신탁이나 네트워크 마케팅(network marketing) 사기가 전염병처럼 번졌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사기극이 가장 횡행했던 지역이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채 봉건사회에서 바로 공산주의로 넘어간 나라였다.

알바니아가 대표적이었다. 북한의 스탈린식 공산주의를 1990년대 초까지 유지했던 알바니아는 각종 사기도 제일 심했다. 1997년 이 나라에서는 사기극 때문에 내전(內戰)까지 일어났다.

1996년 초 알바니아에 하페리(Xhafferi)와 포풀리(Populli)라는 두 개의 대형 피라미드 신탁회사가 생겼다. 그들의 성공은 대단했다. 3백50만 명의 인구 중 두 회사에 투자한 인구가 2백만 명에 달했다. 알바니아의 거의 모든 성인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사기꾼들에게 돈을 맡긴 것이다. 농민들은 소를 팔고 도시인들은 집을 팔았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1997년 1월에 피라미드는 무너졌다. 그러나 폭력에 길들여진 알바니아 사람들은 정부가 이 사기극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정부는 국토의 남쪽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무장세력과의 전투에서 무려 2천명이 전사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피라미드 사기나 네트워크 마케팅은 세계 어디서나 있지만 이러한 사기 광고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라난 사람은 “주가가 매달 두 배로 뛰어오른다” 는 광고를 보면 사기임을 쉽게 알아차린다.

그러나 공산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공산시대에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투자’나 ‘이익’과 같은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주가와 이율이 어느 정도 되어야 표준인지 모르기 때문에 진짜 사업과 사기를 구별하지 못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고조되던 사기는 최근 많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에 익숙해져서 옛날처럼 사기꾼들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북한도 예외 안돼, 미리 교육해야

그러면 앞으로 북한은 어떨까?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탈북자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그들이 사기꾼들의 꾐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사기사건은 매우 일반화됐다”(내일신문, 2005-06-10)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사회에서 사기가 심하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구소련의 경험을 보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만큼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히 삭제해버린 공산주의 국가는 없었다. 과거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보다 훨씬 진보된 시장경제를 경험했다.

최근 북한에서도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발생했지만 북한 사람들은 현대경제를 아직 놀라운 정도로 모르고 있다. 시장경제에 대한 기초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의 매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못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아직 많지 않다. 문제는 북한체제가 무너지면 사기극이 많이 생길 위험성인데, 이 위험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교육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너무 좋게 보이는 ‘사업제안’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10년쯤 뒤에 어떤 ‘신탁주식회사’가 평양 지하철을 하루동안 무료로 탈 수 있다고 하면 이 회사에 돈을 맡길 사람들이 역시 적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 돈은 100% 버릴 돈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저서 :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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