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 북핵 영향력 어느 정도일까

‘체니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곧 방북할 것이란 소문에 대한 일부 워싱턴 소식통들의 반응이다.

북한 정권을 혐오하는 딕 체니 부통령이 살아있는 한,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정일과 만났던 것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체니의 북한 불신은 그만큼 깊고 북핵 협상에 대한 회의감도 뚜렷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악마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악마는 물리친다”는 스스로의 얘기처럼 체니는 북한같은 악한 정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며, 압박과 고립, 무력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체니는 사실상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조지 부시 행정부 대부분의 대북정책을 좌우해온 인물이다.

그의 영향력이 서슬퍼랬던 부시 1기 행정부 때, 북핵 협상대표였던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북한과 협상은 커녕 북측 관계자들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었다. 체니 진영이 만들어준 문서만 그대로 읽어야 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 의혹을 이유로 제네바 핵 합의를 파기하고 대북 중유공급을 전면 중단한 것도 체니 진영의 결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시 2기 행정부 들어서도 크리스토퍼 힐을 영입한 라이스의 대북 협상 정책은 체니의 견제로 한동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힐은 김계관을 만나지도 못한채 회의장 밖을 맴돌아야 했고, 어렵사리 뚫은 방북 길도 포기해야 했다. 모두 체니의 허락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타결된 것도 체니가 잠시 병원에 가느라 반대 지시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퍼져있을 정도로 체니의 북핵협상 거부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체니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는 북핵협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기사가 10일자 뉴욕 타임스에 나왔다.

북한과 시리아간의 핵 커넥션 의혹이 해소되기 전에는 북한과 협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체니 진영이 주장, 라이스가 이끄는 협상파와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체니의 힘은 지금 어느 정도일까?

대북 정책에 대한 체니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부시 행정부 내의 네오콘(신보수주의파) 또는 강경파들의 세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점이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이 지지부진하면서 전쟁을 밀어붙였던 강경파들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체니와 더없이 가까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났고, 체니의 수족처럼 움직였던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은 `리크 게이트’로 날아갔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 대사와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비확산 차관보 등도 사임했다.

체니의 뜻을 받들어 북핵협상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정책 실무자들이 모두 퇴진한 셈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체니의 영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임기 말이 다가올 수록 체니에 대한 국민적 인기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체니 지지도는 벌써부터 바닥을 기고 있고, 언론도 막후에서 권력을 휘둘러온 체니에게 비판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체니의 음습한 행태를 빗대 그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공개 수배했고, 제보가 잇따른다는 후속 기사까지 실었다. 부시의 핵심 참모였던 댄 바틀렛 백악관 전 고문이 체니의 레즈비언 딸과, 변호사 친구 오발 총격사건 등의 예를 그의 폐쇄적인 행태를 비판했다는 글도 함께 실었다.

체니의 우선 관심사가 이란과 시리아, 중동 문제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체니가 이란 공격의 구실을 호시탐탐 찾고 있으며, 이란과 이스라엘간 군사적 충돌을 유도하려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힘이 약해진 체니가 북한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처럼 약화된 체니의 북핵문제에 대한 영향력의 일단이 최근 드러난 적이 있다.

다름 아닌 지난 2일 백악관 조찬에서다. 부시 대통령 주재로 국무, 국방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 국가안보 보좌관 등이 모두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힐이 북핵 2단계 합의 결과를 보고했다.

체니는 이 자리에서 북핵 협상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논쟁이 벌어졌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힐의 보고에 체니의 심기가 편했을 리는 없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체니의 반대나 불쾌함에는 아랑곳없이 힐의 합의를 승인했다. 다음 날엔 대통령 명의로 직접 성명을 내 북핵 협상의 진전을 평가하고, 라이스와 힐, 협상팀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체니 진영의 반대를 외면한 채 라이스와 힐이 이끄는 협상파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셈이다.

물론 체니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있다.

결정적 고비에서는 체니 진영의 제동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순항하던 북핵 협상이 삐걱거리고 북한은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미국 내 여론이 힘을 얻는다면 반격은 거세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급진전되는 북핵협상과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들이 순항을 계속한다면 체니도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이 2단계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6자외무장관 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린다면 `체니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라도’ 라이스 방북과 3-4자 정상회담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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