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수수 혐의로 철직된 청진시 수남구역 보안소(파출소) 세포(당원 5명 책임) 비서가 자신의 해임에 대한 앙갚음으로 보안소장의 권총을 훔쳐 달아나 관련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김일성 생일 행사까지 일부 취소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함경북도 내부소식통은 6일 데일리NK와 가진 통화에서 “지난달 14일 청진 수남구역 청진화학섬유공장 보안소에 실탄 8발이 장착된 보안소장의 권총이 없어졌다”며 “결국 총은 찾았지만, 숱한 보안원(경찰)들과 간부들이 보위부에 끌려가고 태양절(김일성 생일)행사마저 흐지부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청진화학섬유공장 내 보안소장 최모 씨는 권총을 사무실 서랍에 넣어둔 채 도(道)당에서 소집한 김일성 생일행사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점심시간 때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서랍에 있던 권총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보안원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지만 결국 행방을 찾지 못했다.
사태가 심각해질 조짐이 보이자 보안소장은 함경북도(道) 보안국과 청진시 보안서, 도당과 도보위부에 보고했다.
김일성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권총 분실 사건을 접수한 함경북도당과 사법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생일을 앞두고 ‘특별경계주간’이 선포될 만큼 분위기가 삼엄해진다. 도당에서는 공장 직원들 뿐 아니라 수남구역 적위대원들까지 총 동원, 공장 주변 하수도까지 수색했다.
이날 수사에 나선 보안원들은 골목길에서까지 통행자들의 신분과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들은 모두 공장 창고에 가두고 심층 조사를 벌였다.
소식통은 “적위대원들까지 총동원시켜 주변을 수색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온 청진시에 괴소문이 퍼졌다”면서 “그런데 소문이 사실과 다르게 퍼지는 바람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무장 강도들이 나타나 섬유공장 인민보위대 무기고를 습격했다’ ‘보안소가 습격을 받아 무기들을 털렸다’는 괴소문들이 퍼졌으며, 심지어 ‘수령님(김일성) 동상을 파괴할 임무를 받고 안기부(국정원) 특공대가 파견됐다’ ‘보안원들에게 쫓기던 괴뢰군(국군) 특공대가 수남 구역 하수도를 통해 도망쳤다’는 유언비어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 같은 소문에 따라 다음날 15일 예정됐던 김일성의 생일행사 마저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모든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김일성 동상을 찾아 꽃을 놓고 인사를 해야 한다.
15일 아침 청진시 포항구역에 있는 김일성 동상주변은 보안원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삼엄한 경계망을 폈다. 이런 풍경에 놀란 주민들은 실제로 김일성 생일행사를 방해할 임무를 받은 무장괴한들이 있는 것으로 착각해 동상주변에 접근하지도 않았고, 결국 김일성의 생일 분위기 조성을 위해 조직된 모든 행사들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시급히 종결되고 말았다.
결국 중앙 검찰소와 국가 보위부 수사에 나서면서 4월 25일에야 사건이 해결됐다.
범인은 사건 발생 석 달 전 부정부패 혐의로 해임 철직된 전 섬유공장 보안소 비서 한 모 씨의 소행으로 판명됐다. 한 씨는 자신의 비리 사실을 상부에 증언한 섬유공장 지배인과 보안소장에 대한 앙갚음으로 권총을 훔쳤다.
북한에서는 총기류가 분실되면 해당 지역에 대한 고위인사의 방문이 모두 취소 되는 등 사건 해결까지 계엄 상태와 같은 통제가 실시되며 담당 간부에게는 무거운 처벌이 뒤 따른다.
사건의 여파는 매우 컸다. 권총 탈취범 한 씨가 수사 과정에서 그동안 섬유공장에서 벌어졌던 간부들의 각종 부정부패를 폭로하면서 보안서장, 공장 지배인, 공장 비서, 공장 창고장, 계산원을 비롯해 권총 분실 당일 당직근무를 섰던 보안원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공장 간부들이 마약 장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안소장과 짜고 공장설비와 자재를 몰래 팔아치웠던 일까지 밝혀진 것이다.
소식통은 “당시 권총분실사건으로 청진은 지금까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면서 “중앙의 수사로 체포된 사람들이 연이어 다른 사람들의 비행을 폭로하고 있어 청진 수남구역 간부들이 모두 떨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