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파업’ 발전인가, 그 반대인가?

발전적인 것인지 발전을 저해하는 것인지 다 같이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동남아시아에 가볼수록 그곳에 비해 한국이 엄청나게 성공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선 좀 불안해진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한국 신문이 전하는 소식들은 주로 ‘철도노조 파업’ ‘노동 연구원 직장폐쇄’ 운운 하는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발전인가, 그 반대인가?


동일방직 여성근로자들에게 똥물을 끼얹던 시절(1978년)에 비하면, 노조가 쟁의를 할 수 있게 된 그간의 변화는 물론 민주주의라는 기준에서 보면 진일보, 아니, 진십보(進十步)라 해도 좋을 것이 것이다. 특히 그러한 현상의 합법적 측면에 대해서는 정부는 물론 그 누구도 시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사태의 ‘불법적’ 측면이 다반사처럼 되는 것을 과연 발전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런 ‘불법적’ 측면이 발생하는 원인의 일부를 만약 사용자측이나 공권력이 제공하는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요인은 가능한 한 최소화 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근로자의 복지와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본연의 순법적(順法的) 노동쟁의를 의도적으로 정치투쟁, 이념투쟁, 체제투쟁, 탈법투쟁, 게발트(gewalt, 폭력) 투쟁으로 변질 시키려는 일부의 만성화된 작태는 결코 발전적이라 할 수 없다. 발전적이 아닌 정도를 넘어 그것은 부도덕하고 반(反)사회적이다.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를 떠나 감성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툭하면 이마에 띠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쥔 채 팔을 들었다 놨다 하며 고함을 치고 농성을 하고 난리를 치는 광경을 보면 참 보기가 아름답지 않다. ‘수구꼴통 봉건잔재’라고 하겠지만, 지금이 무슨 군사독재 시절이냐 왜 그렇게 핏발을 세우느냐?


그래, 누가 무슨 힘으로 말릴 수 있겠느냐? 할 터면 해봐라. 가정해서 나라가 설령 캄보디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가 안쓰러울 까닭은 전혀 없다. 왜? 나는 다 살았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된다 해도 그건 너희들이 살 세상이지 내가 살 세상이 아니다. 그러니 해 볼 테면 해봐라.


초등학교에도 못가는 여자 아이들이 문화 유적지 안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매달린다. “엄마, 무지 이뻐, 이거 이천 원” “아빠, 무지 미남(美男), 이거 천 원”


다시 그런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는 겁 안 난다. 6·25 피난살이 때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그렇게 살아 보았으니까.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본 적 없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바로가기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