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레일 비에 쓸려 강둑에 덩그러니…

▲ 북한 강원도 금강군 수해지역

기자는 북한 수해의 실체를 취재하기 위해 북한에 인접한 지린성 투먼시로 향했다. 이곳에서 평안남도 북창군에 거주하고 있는 박기창(가명•48세) 씨를 만났다. 그는 여권을 소지하고 8월 말부터 친척방문을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

박씨는 홍수피해가 가장 심각한 평안남도 신양, 양덕, 고원 등의 수해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해지역에 인력과 장비가 제대로 투입되지 않아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수해복구 현장에 대학생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의 설비와 경제력으로는 단시일 내에 피해시설이 완전히 복구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욱이 전염병까지 퍼져 사람들이 사는 것에 진저리를 친다고 했다.

[기회취재①-北민심 돌아섰다]

지금 북한, 성인 유랑자도 늘고 있다

다음은 박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북한정부가 이번 수해피해 실태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는가?

수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TV로 공식 발표했다. 다만 인명피해, 수재민 숫자, 재산피해 등 구체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다.

-수해가 심하다는 신양, 양덕, 회창, 덕천 등 산간지대 피해상황은 어떤가?

홍수피해가 제일 심한 신양, 양덕, 회창, 요덕에는 군마다 10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살림집들이 모두 매몰된 것은 아니다. 강둑 근처나 산비탈 밑에 있던 집들이 떠내려 가거나 매몰됐다.

인명피해는 여기서부터 대략 산출해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 수 백명이 죽거나 실종됐을 것으로 본다. 실종, 사상자, 집 없는 사람 등을 합쳐 대략 5만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재산피해를 산출하기는 좀 어렵다.

-피해지역을 직접 보았는가?

복구인력으로 참여하면서 현장을 직접 보았다. 개울과 강기슭에 있던 집들이 모래와 진흙으로 모두 매몰되어 형체도 없었다. 철길은 300~1천m 길이로 군데군데 끊겨있다. 철길 레일이 빗물에 떠내려가 강둑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도 보였다. 도로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쪽에서 동해로 가려면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데, 주민들 왕래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철길이 끊겨 열차가 못 다니기 때문에 불편하다. 그러나 육로 내왕은 가능하다. 우회도로를 내서 자동차들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장사꾼들은 애를 먹는다.

일반주민들은 열차를 이용하기 어렵다. 통행증 발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통행증을 받지 못하면 열차표도 살 수 없다. 그나마 장사꾼들이 통행증을 발급받아 물건을 나르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아 강원도나 함경도는 상품이 없어 물가가 계속 뛰고 있다.

-피해복구 현장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동원됐나?

지금 수해복구 현장에는 기업소 노동자들, 평안남도 지역의 대학생들, 전문학교(남한의 직업학교와 유사)학생들이 총동원되었다. 8월은 조선(북한)에 있는 대학들이 10~15일 정도 방학을 하는데, 대학생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건설단으로 조직해 피해복구현장에 동원했다.

수해복구 현장에 동원된 대학생들에게 식량은 조금 주는 것 같고 부식물, 잠자리는 모두 자체 부담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인민군대를 동원해야 하는데 8월 말까지 군인들은 단 한 명도 동원되지 않았다.

-군대는 왜 동원시키지 않는가?

정세가 긴장됐다고 한다. 미군이 침략해 들어올지 모른다는 소문 말이다. 190만 명의 군인들이 모두 전투태세에 들어 갔다.

-동원된 대학생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가?

현장에 풀막(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자면서 삽과 들것으로 매몰된 모래진흙들을 져 나른다. 그렇게 해서는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다.

-트럭이나 포크레인, 불도저와 같은 장비는 있나?

기계장비가 동원되어 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기계장비가 있다 한들 기름이 없어 가동도 어렵다. 대도시도 장비가 없는데 군 단위 도시에 그런 것이 지원되겠는가. 아무래도 복구작업에 군대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수인성 전염병이 돌고 있다던데…

전염병은 파라티푸스, 장티푸스가 돌고 있다. 도, 시, 군마다 ‘위생 방역소’가 있다. 그런데 도통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예방접종과 같은 것은 할 형편이 못되는 것 같다.

-홍수피해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무더기 비가 내린 것이 기본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산에 나무 하나 없는데 비가 오면 당연히 토사가 흘러내리고 홍수가 아래 민가로 몰려오게 돼 있다. 강물도 제방사업이 안되다 보니 그냥 흘러 넘친다. 국가가 홍수방지용 댐을 건설할 여력이 없다.

-작년까지 당국이 강원도, 황해도 지역 국토관리를 완성했다고 굉장히 떠들었다. 그렇다면 평안남도 산간지역 국토관리는 안 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우리나라 시, 군마다 ‘강하천 건설사업소’라는 기업소가 있다. 이들의 기본 과업은 강하천을 잘 정리하여 홍수피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업소들은 상급으로부터 본신 과업(기본업무)을 다할 수 없게 관리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양강도 삼수발전소 건설이 가장 큰 대상건설(국가가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진행하는 건설물)이다. 시, 군당, 행정위원회에서는 강하천건설사업소를 비롯한 지방 기업소들의 기본노력을 뽑아내 ‘돌격대’로 내보낸다. 기업소의 젊은 노동력이 다 빠져나간다. 일할 사람이 없다. 기업소 간판만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홍수피해를 막기 위한 강하천 정리가 등한시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술과 기계설비다. 만일 혁신적인 기술이 나왔다 해도 기계설비가 없어 일하기 어렵고 자기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 기계설비가 있어도 기름이 없고 강∙ 하천 정리 기술수준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저것 모두 난관이다.

-수해 이후에 무엇이 가장 모자라는가?

우선은 식량이다. 어쨌든 먹어야 일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다음 생필품이다. 사람이 벌거숭이로 산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일할 수 있는 도구다. 일 능률을 높일 수 있는 기계장비다. 건설자재도 필요하다.

-의약품은 어떤가?

당연히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말고도 이름 모를 전염병들이 많다. 여기서는 병 걸리면 죽기 살기로 앓아야 한다. 중국 하고는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먹지 못해 생기는 병으로 알고 있다. 의약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 심정이 말이 아니겠는데…

10년 전(식량난 시기)에 사람들이 떼로 죽었는데도 손 하나 쓰지 못했다. 그 후로 10년 동안 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말 진저리를 친다. 문제는 자식들까지 이 고생이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고 약초를 캐서 살아가는데 국가에서 세금으로 얼마나 많이 걷어가는가.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삶의 의욕마저 점점 포기하는 것 같다.

중국 창바이(長白)=최전호 기자(평북출신, 2003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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