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현실 직시하되 결과를 기다리자

3월 26일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이번 침몰사건으로 46명의 젊은 병사들이 실종됐다. 구조 작업에 나섰던 한주호 준위가 숨졌고, 98금양호 어선의 선원들이 실종되기도 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구조 작업은 인양 작업으로 대체됐다. 사건 18일 째, 함미의 인양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침몰원인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후 선체가 최종 인양되면 침몰사건 원인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 하지만 대형 재난에 마주한 한국 사회의 모습은 민망할 정도로 미숙하고 조급했다.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는 데에는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이제 겨우 함미 인양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고 이후부터 지금껏 한국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고 원인과 실종자 구조, 인양 과정에 대한 온갖 억측과 낭설들이었다. 군과 정부는 미숙한 대응으로 의혹을 낳았고, 방송·언론은 추측성 보도들로 의문을 증폭했다. 인터넷에서는 유언비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군 당국의 초기 대응 미흡은 불신을 자초한 1차적 원인이 됐다. 사건이 발생하자 군은 생존 병사들을 격리시켜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했고, 폭발음 청취 이후 8분이 지난 TOD(열상감시장치) 영상만을 공개했으며, 사건 발생시각을 최초 밤 9시 45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군 당국은 더 이상 없다던 TOD 영상을 두 번이나 더 공개했고, 사건 발생시각 또한 다섯 차례나 수정 발표했다. 군 당국은 착오와 혼선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이 내부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는 지적과 은폐 의혹 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됐다.


7일 군은 민군 합동조사단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생존 대원들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침몰 전후 상황이 분 단위로 설명됐고, 침몰 직전 장병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도 제시됐다. 이에 따라 침몰시간 및 당시 상황, 구조 과정에 대한 사실 관계가 정리되는데 한결 도움이 됐다.


침몰 사건에 대한 정보 공개와 군사 기밀 보호는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이 이에 대한 접점을 찾아 초기에 시의적절한 대응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전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할 국회의원들도 섣부른 발언과 행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분열과 불신을 조장했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비공개로 보고 받은 사고 관련 정보를 언론에 낱낱이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 대표는 “군이 자꾸 무언가를 숨기고 상황을 짜깁기 한다”고 말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고 수습에 나서야 할 국방장관을 불러놓고 되돌이표 질문들을 해가며 시간을 허비했다. 또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단계에서 국회는 총리와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방송·언론 등은 추측성 보도들을 쏟아내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또다시 불거지는 의혹들>, <천안함 미스터리…꼬리 무는 ‘의혹·의문’>, <軍, 천안함 ‘의문의 7분’ 알면서 숨겼나?>, <천안함 사고 무얼 감추는가>, <천안함 7대 의혹…정부 진실 은폐하나> 등 천안함 사건 관련 기사 제목들은 하나 같이 의혹이나 의문을 부풀리는 형태들이었다.


언론을 통해 제기된 침몰원인설만 10여 가지에 이른다. 정확한 팩트(fact)에 기초하는 등 저널리즘의 원칙에 근거한 보도를 해야 할 방송·언론이 의혹 부풀리기에 나선 것은 큰 문제다.


기사의 속을 훑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보도가 객관성을 띠기 위해서는 취재원이 분명해야 하고, 교차 검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관련 기사를 보면, 취재원이 해군 전역자, 군 관계자, 한 군사전문가 등 모호한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로 전해졌다/알려졌다/ 관측된다’는 식의 추측성 서술어들이 남발됐다. 선박, 무기 등 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의 엇갈린 견해를 늘어놓아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하주용 교수는 “추측이나 첩보를 사실 확인 없이 일단 머리기사로 보도한 다음 설명이 다르면 ‘의혹’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온갖 의혹과 낭설은 일부 누리꾼들이 가세하면서 확대·재생산됐다. 인터넷상에는 “예리하게 절단된 천안함은 기획·자작극의 증거”, “현 정부가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국면 전환용으로 벌인 자작극” 등의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훈련 도중 아군, 즉 속초함이 오인 사격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아군 오폭설도 있고, “천안함과 미 잠수함이 충돌해 잠수함은 출입구 탑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천안함은 후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미 잠수함 충돌설도 있다.


문제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마주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과 원인 분석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은 구체적인 원인 규명에 총력을 다해야 할 판에 언론,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의혹들을 시시각각 대처하기 바쁘다.


언론은 과열 취재 경쟁 때문에 사실 보도 대신 부풀어낸 기사를 남발해 이를 보는 국민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언론사의 견해인지 헷갈려 한다. 북침설, 공작설, 자작설 등 각종 설 등은 사고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신중한 대처 대신 공포나 우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보여준 국민들의 모습은 너무 조급했다.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원인을 두고 벌써부터 설왕설래 했고, 사고를 해명할 군 당국에 문책부터 하려 했다.


이러다보면 사고 함정 조사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명확한 원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이후의 대응 방식에 대한 논의는 밀려날 수밖에 없다. ‘냄비근성’처럼 한껏 소란스럽다가 시간이 지나 기껏 최종 결과가 밝혀졌을 때는 오히려 조용하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의 정확한 원인을 가리기 위해 민군 합동조사단과는 별개로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들과 함께 다국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또한 조사 결과가 나오면 유엔의 관련 기구에 검증을 의뢰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이 모두가 객관적이고 과학적 원인 규명을 통해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과 인내심이다. 결과를 미리 예단해 혼란을 가중시키기 보다는 정부와 군당국의 침몰원인 규명을 차분히 지켜본 뒤 결과에 신속하고 분명하게 대응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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