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대응과 국가의 존재이유

지난 4월 29일에는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결식이 있었다. 사건 발생 33일 만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성격과 관련하여 그간의 정황증거들은 북한의 도발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물증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의 소행임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응방안은 현실적으로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국민들 사이에는 ‘안보 허무주의의 패색’과 그것의 즉각적 반발인 ‘분노와 응징의 감상적 기운’이 교차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제재 논란은 그간 국제법적 차원의 고려에 치중해 있었다. 북한의 도발임이 판명된다 하더라도 한국의 현실적인 제재가 사실상 어렵다는 신중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그랬고, 국가의 자위권(自衛權)에 입각할 때 제재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반박하는 학자들도 그랬으며, 한미동맹상의 전작권 문제를 근거로 동원하며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46명 개개인의 생명, 그리고 향후 있을 지도 모를 미래 희생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할 때도 우리는 역시 국제법적 판단 기준을 우선적으로 의식해야 하는가? 물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와 같은 학자들은 국가의지를 국제법의 하위에 두면서 국제사회의 법질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위 있는 세계정부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가가 국제법의 언명에 국민의 안위를 귀속시켜야 한다면 이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 수 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는 결국 국민 개개인의 안위에 관한 문제와 별개일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보다 철학적인 사색으로 연결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오래된 의문이 그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가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의 절대적 힘의 중요성을 도출하는 과정은 이 같은 의문에 대해, 그리고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된 정부의 제재 방안에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홉스는 자연법과 자연권의 모순관계를 통해 국가의 성립과정을 연역해 내고 있다. 홉스의 자연법 제1계율에 따르면, 자연법(law of nature)은 인간과 사회가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생명의 보전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하는 이성의 계율 혹은 보편규칙이다. 또한 자연법 제2계율에서 홉스는 자연법을 비참한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인류가 평화와 자기보존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상태로 옮아가게 하는 이성의 일반법칙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하면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법이란 각 개인들이 자기보전에 대한 위협적 요소와 행위를 금지하는 소극적(negative)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예컨대 살인을 하지 말라, 남을 때리지 말라 등과 같은 계율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홉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한 적극적 권리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물리적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즉 자연권(right of nature)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권리를 설정한 것이다. 가령 타인이 자신의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려 할 경우 정당방위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쯤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각자 자기보존을 위해 자연권만을 추구할 경우 이것은 자연법에 위배되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자연권마저 실현할 수 없다는 모순에 봉착한다. 자연법과 자연권의 괴리(gap)를 메우기 위해 홉스는 자연권의 상호양보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했고, 그 결과 출현한 것이 사회계약론과 절대국가의 논리였다. 물론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건 절대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성립과정이다.



홉스는 각 개인이 인류의 평화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자연권을 양도한다는 공리적 입장에서 사회의 기원을 얘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홉스에게 있어 사회란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러할 경우에’라는 전제 하에서 이뤄진 인위적 조직체이며 사회의 최상위 형태가 바로 국가가 된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국민들이 생명보전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처벌권을 국가에 양도하고 충성을 다하는 대신, 국가는 국민의 안위를 철저히 보장해 줘야 한다. 사회계약이라는 가상의 정치구도 하에서 국민들은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와 같은 것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묵묵히 수행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의 처벌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국가가 그 의무를 성실히 준수하지 않을 때는 어떤가? 그래도 국민들은 여전히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군 복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국가의 의무태만은 그와 같은 계약의 파기를 의미할 뿐 아니라 심각한 국가안보상의 문제를 야기해서 결국은 국가 그 자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떤가? 국가는 국민들에게 의무만을 강요하고 그들의 생명보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소홀히 다루지는 않았는가? 국민 개개인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국가안보 사태에 직면할 때 우리 ‘국가’는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는가? 예컨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때 우리 정부는 그것이 직접적인 인명피해로 연계됐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안보의식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대응을 취했던가?



안보는 국가의 존립뿐 아니라 국민들의 안위와도 직계된다. 안보는 가장 보수적인 관점에서 정립돼야 할 국가의 최우선적인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안보 개념에는 유연성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그러나 지난 두 정부 하에서는 국가안보를 지나치게 유연한 것으로 인식하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주적(主敵)’마저 애써 무시했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북한이 사용해 온 도발면허(provocation licence)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지난 정부에서의 ‘인식의 관성’은 현재까지 잔존하면서 국민들까지 안보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만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정부는 북한에 도발의 수준 여하를 불문하고 다시는 여하한 불법행위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북한에 경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시위를 통해 강한 경각심을 심어줘야 하며 우리 국민들에게는 확고한 안전보장의 의사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같은 국가의무야말로 국가의 참다운 존재이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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