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군법회의’ 주장…김정일의 야만 부추길 수도

I.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되고 천안함 피격사건은 순식간에 관심에서 사라지는 느낌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에 감사원은 25명의 군장성, 고위 장교들이 차마 정상적인 군대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허위 보고, 조작, 근무태만 등을 저질렀다는 중간조사 발표를 하였다.


이 발표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 ‘대북 유화주의자’인 박지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김정일과 그의 수하들이 아니라 한국의 국방부장관을 해임하고 관련 장교들은 군법회의에 회부하라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보수성향의 신문에서도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군의 대응을 격렬히 비난하면서 징계가 아니라 수사 내지는 군법회의 회부를 요구하는 기사와 사설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감사원의 발표내용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할 점이 빠져있다. 즉 한국의 군 수뇌부들이 무슨 이유로 허위보고와 조작을 하였고 근무태만을 하였는지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국회 천안함 특위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감사원의 발표 내용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반박하였다.


예를 들어 김장관은 군이 천안함 사건 발생 시각을 조작하였다는 감사원의 발표내용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주장하였다. 도대체 군이 발생시각을 조작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즉 사건시각을 변경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 동기가 결코 조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II


우리는 천안함이 피격되어 침몰된 이후 어떤 일이 우리 군에서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는 않다. 다만 가장 정확하고 많은 자료와 증언을 접한 군과 감사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런데 군과 감사원의 주장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을 때, 우리는 누구의 주장에 더 신빙성을 부여해야할지에 대해 난감한 경우가 있다.


우선 작년 대청해전 이후에 북한이 잠수함을 이용한 기습도발을 할 것이라는 판단을 해군과 합참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감사원의 주장을 살펴보자.


감사원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군은 적이 도발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대비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의 이 주장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매우 괴이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적이 잠수함을 이용하여 기습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과 합참 스스로가 적의 도발 앞에서 소풍이라도 간 듯 직무유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스스로 적의 도발을 경고하고 스스로 무사태평으로 직무를 유기한다?


김태영 장관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잠수함의 도발가능성을 해군과 합참이 제기하였으나 3번째로 가장 낮은 가능성이었고, 대잠경계를 위한 신형 장비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의 잠수함이 우리 해군의 초계함을 어뢰로 공격할 가능성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하였다.


김태영 장관의 주장은 그 문맥과 구체성으로 보아 허위 증언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감사원은 북한 잠수함의 기습도발을 한국군이 상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야 하지, 알고도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분명 정상적 판단이 아니다. 바로 사실을 에워싸고 있는 정황·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합참의장이 술에 취해 지휘통제실을 벗어나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합참의장이 공식일정 이후 회식에서 술을 마셨을 때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합참의장이 어떤 경우에도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할 만큼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규정이나 관례가 있다면, 국방부장관, 총리, 그리고 대통령 역시 어떤 경우에도 취할 만큼 술을 마시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 이런 규정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를 못했다.


또 감사원은 합참의장이 근무지에 복귀하여 지휘통제실에 있지 않고 집무실에 들어가 취침을 하였으며, 자신이 취하지 않은 조치를 했다며 사후에 문서를 조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합참은 의장이 약 새벽 2시까지 지휘통제실에서 인명구조 등에 필요한 제반 조치를 취하였으며 그 이후 휴식을 위해 5시까지 집무실에서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합참의장은 비상사태 시에는 국가안전을 위해 밤을 새워 근무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합참의장 자신이 군의 중요한 전력이고,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음도 당연하다. 공교롭게도 합참의장이 회식 음주 후에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 비해서 근무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원장도 양주 10잔을 마시면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폭침일 다음날 새벽에 합참의장 본인이 지휘통제실 근처의 집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지휘통제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합참의장 본인이 판단할 수는 없는가?


필자는 천안함 폭침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군의 행동에 문제점이 없다고 주장할 의도는 없다. 예를 들어 보고 지연, 보고선의 혼란, 보고 내용의 혼선 등에 대해 분명하게 경위가 밝혀져야 하고, 이에 따라 문책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군의 보고지연과 보고내용의 누락·변경이 어떤 시점에 일어났는지도 중요하다. 즉 북한군에 특별 이상동향이 없고,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당시 청와대의 판단이 해군과 합참의 보고를 통해 얻어진 것인지, 아니면 역으로 해군의 사후보고가 청와대의 판단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거의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감사원의 발표에는 왜 보고가 지연되었으며, 왜 보고 내용에 누락 내지는 변경이 일어났는지 그 경위와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대한민국 군대가 극도로 무질서하며 군기문란이 극에 달했다고 알고 있다. 필자는 감사원에게 정말 묻고 싶다. 정말 우리 군이 그처럼 한심한 상황이었는가? 군의 해명이 군기문란에 대한 변명에 불과한지, 아니면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그 맥락과 동기를 무시한 왜곡인지에 대하여 필자는 아직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필자는 김태영 국방장관과 군의 해명에 더 신뢰를 부여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감사원이 지적한 군기해이 사항 대부분에서 동일한 패턴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군은 처음에는 제대로 대응하였으나,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의 조치와 행위를 군기문란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사원은 국방부 관계자가 위기조치반을 가동시키지 않았으면서도 장관에게 허위보고를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위기조치반 관련자 모두가 정위치에서 근무하였으며, 단지 음성으로 공지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관계자들이 의도적 허위보고를 할 동기가 전혀 없다.


III.


46명의 젊은 해군 사병들이 한순간에 전사하고 이어 한준호 준위와 민간인 9명의 희생이 뒤따랐다. 이것은 엄청난 희생이며 이 희생의 대가를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25명의 한국군 최고 수뇌부의 장성, 고급장교를 징계하라는 것이 감사원의 주장이다.


물론 의문의 여지가 없이 확인된 잘못은 관련규정에 따라 징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감사원이 이처럼 엄청난 징계 내지는 군법에 따르는 형사소추를 요구할 때에는 그 결과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이 신중하고 엄밀해야 한다. 만일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설득력이 약하다거나 관련자들의 정당한 해명을 억누르며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이라면, 그 자체가 김정일의 야만에 동조․기여하는 것이다.


더욱 착잡한 것은 광우병 사태 시에 국민들이 왜곡·선동세력의 날조에 넘어가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듯이, 이번 천안함 사태 이후 군에 대한 일방적 비판여론 역시 상당부분 바람을 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사 결과에 대하여 좀 더  균형 잡힌 사실 및 경위 확인과 함께, 김정일의 만행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즉 이번 사건에서 핵심은 북한의 잠수함 어뢰공격을 상상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있으며, 나머지는 부차적이다.


만일 군 수뇌부를 대규모 징계하거나 군법회의에 넘긴다면, 그것은 군기확립을 통한 안보강화 보다는 김정일로 하여금 또 다시 상상을 절하는 도발을 부추기는 측면이 더 클 것이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중에 이상의 합참의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필자는 그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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