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北소행 안 믿는 南진보진영 보며…

1년 전 남한의 구축함인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그 원인을 둘러싸고 불확실성이 컸다. 물론 가장 먼저 북한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남한 정부를 비롯해 그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지 않은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일련의 타당해 보이는 시나리오들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뢰가 남으로 떠내려 왔을 것이라든지, 심지어 6·25전쟁 당시의 미군 지뢰가 쓸려 내려왔을 것이라는 등의 설들이 난무했다.


결국 다국적 조사팀의 강력한 법의학적인 증거들은 북한의 잠수정에서부터 어뢰가 발사되었다는 불가항력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타당한 설명이 있을 수 없다.


평양의 동기


북한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천안함을 공격했다. 평양정권은 2009년 11월에 있었던 해상 충돌에서 남한에서 받은 굴욕적인 패배를 보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측의 함대는 남한의 해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북한정권은 잠수함을 이용한 기습적인 공격으로 비대칭적인 공격을 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서해에서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이용해 북방한계선(NLL)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남한을 위협하려는 등의 전술적인 이득을 챙기려 했을 것이다.


또한 NLL 주변에서의 공격은 북한의 전략적 목적들을 달성하는 전술적 도구이기도 하다. 북한의 군사적 활동은 적들에게 (자신들이)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며, 평양정권이 우위의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게 할 수 있고,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립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평양은 전통적으로 그들의 상대국들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내고 협상력(leverage)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래서 대북제재와 같은 압박 전술을 포기하도록 미국과 남한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장거리 미사일 및 2009년의 핵실험이 대외정책의 목적을 달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고, 그래서 더 도발적이고 위험성이 더 큰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또한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일어난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공격은 김정일에서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후계작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내부 선전선동 효과라는 뜻밖의 성과도 안겨주었다. 북한은 진행 중인 후계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이전에도 반복적으로 이러한 도발적인 행동을 해 왔기 때문에 후계문제 자체가 북한의 도발에 있어서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가지 요소이기는 하다.


남한 진보진영의 증거 부정


남한의 진보진영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다국적 조사팀의 분명하고 종합적이며 확고한 결과를 격렬하게 부정해왔다. 증거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북한정권에 대해서 날조해왔던 수많은 신화들을 부정해야 했다. 그들은 다국적 조사팀의 보고서를 이명박 대통령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일부는 미 해군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실시되었던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한 국민들의 70%가 천안함 공격에 북한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약관화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30%의 국민(남한 국민들 중 이 정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들은 북한이 연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수 년간 남한의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은 북한의 도발, 인권유린, 비타협적인 태도 등과 관련, 미국과 남한의 강경(hard line)정책을 비난하면서도 북한정권은 어떠한 책임도 없는 것처럼 주장해왔다. 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에서 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미국의 정권 교체 이후에도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완화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남한 진보진영의 주장은 점차적으로 공허하게만 울려 퍼졌다. 사실상, 2009년에 있었던 일련의 도발을 거치면서 북한 정권은 오바마가 내민 손을 강력하게 거절했다. 이로써 북한 문제에 있어서의 책임주체는 미국의 정책이 아니라 평양정권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뒤늦게 깨닫게 됐다.


협상으로 되돌아가는 일방 정책(one-track policy)과 일련의 양보, 북한의 위반사항에 대한 처벌포기 등이 핵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더 이상의 도발을 막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진전을 이뤄낼 수도 있었던 2010년 3월의 비밀 협상도 평양 정권이 천안함 공격을 못하도록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와 유사하게 북한정권이 연평도를 폭격할 즈음해서는 남한도 비밀리에 북한 당국자들을 11월에 만났다(당시에는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도 토론이 됐다).


연평도 폭격이후 북한에 대한 남한의 공식적인 태도는 더욱 냉담해졌다. 연평도 폭격에 대한 평양정권의 책임은 부정될 수도 없었고 민간인의 사망은 남한국민들을 천안함 침몰 당시보다 훨씬 더 분노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당치 않는 도발행동에 대해 일부 남한의 진보진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의 무조건적인 포용전략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비난하기도 했다.


실망스러운 유엔의 대처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노골적인 공격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소극적 대응 뿐만 아니라 유엔결의안 위반 내용인 우라늄 시설 공개에 대한 반응도 참으로 실망스럽다. 천안함 조사보고서가 출간 되면 중국이 당황스럽기는 하겠지만 올바른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베이징 정권은 과거 평양정권이 중국이 더 이상 묵인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도를 넘어 호전적이었을 때, 비록 유화한 방식이기는 했지만 북한을 벌 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소극적인 방식이긴 했지만 안보리의 의장성명 발표와 관련,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에 힘을 실을 주지도 않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보리의 결의안도 반대했다. 문건은 겨우 “공격에 따른 인명 손실을 비난하고 깊은 연민과 희생자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공격주체로 북한을 명백하게 지목하지도 않았고 훨씬 미약한 행동을 취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시 한번 온화한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하자는데 찬성하며 법의 규칙을 포기했다. 유엔의 이상적인 대응은 북한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추가적으로 따끔한 제재를 시행하는 구속력 있는 결의안이었을 것이다.


중국은 공격 그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북한의) 공격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대응을 비판했다. 베이징 정권은 서해에서 있었던 한미 군사훈련이 중국을 겨냥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중국의 지도부는 훈련의 실질적인 이유(북한의 천안함 격침)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보였다.


협상에 대한 공격의 충격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공격은 남북관계와 6자회담 성공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가중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회담으로 나아가기 전에 일련의 공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요구했다. 국들의 강력한 지지는 이 문제에 대한 남한 정부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할 것이다. 평양 정권의 (사과에 대한) 거절은 지난달에 있었던 남북군사회담 결렬의 주된 요인이었다.


남한 정부가 북한 정권의 안보문제를 잘 관리한다고 느낄 때까지 워싱턴 정부는 북미 양자회담도 연기하며 동맹국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접촉 부재가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간주하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중요한 동맹국인 남한을 약화시키는 어떠한 모험도 꺼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워싱턴의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움직임의 부재가 평양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도발적인 행동에 의지하게 유도할지 아니면 더 강력한 유화정책을 취하게 할지, 혹은 양자를 모두 택하게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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