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언어’ 쓰는 김정은에 論語를 읽게 하자

논어(論語)를 읽는다. 고전(古典) 중의 고전 격인 이 책은 선뜻 읽어가기가 망설여지는 몇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먼저 방대한 분량이 독자를 기죽이고, 첫장부터 쏟아지는 고리타분한 설교가 ‘재미’적 요소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주유열국하며 치세(治世)와 수신(修身)에 대하여 묻고 답한 기록이다. 유교주의 폐단으로 지목받아 타오르는 화염에 갇히기도 했으며,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비림비공(批林批孔)으로 비판받아 금서가 되기도 했다. 하물며 현대의 독자들도 논어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해설자의 견해가 곁들어진 해설서와 실용서적이 그 명맥을 자처하며 독자들을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대륙의 붉은별 마오쩌둥(毛澤東)이 논어를 읽었다고 허세 부렸다지만, 실제 그의 생활과 철학은 논어의 그것과는 상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는 현 시기 가장 유의미한 고전이다. 동북아 국제정세는 지도력을 상실하고 현실주의에 매진하는 위선적 지도자들로 인해 혼탁하다. 거악(巨惡) 북한의 독재정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확실한 비전을 가진 정치세력도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논어를 깊게 읽은 독자라면 동양적 철인정치, 도덕정치의 이상향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인류역사는 지구라는 거대한 시간선상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고전은 여전히 하나의 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에게 많은 메시지를 제공한다. 공자 역시 혼탁한 정세 속에서 이상적 정치를 설파하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극심한 기아를 겪기도 했다. 사랑하는 제자를 잃었으며 결국 정학한 말년에 이르러 아무런 명예를 얻지 못하고 ‘논어’로 남아 전승됐다.  

공자가 보았던 혼탁한 정치는 수없이 반복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다만 진일보한 것이 있다면 현대인은 공자의 시대의 비해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과하다며 비판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론의 장은 더욱 더 공개적이고 급진적일 필요가 있다. 결국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들 위주로 가려 보는 것이 인간이다. 배움과 겸손이 있다면 그 무한한 자유는 스스로 제어장치를 고안해 낼 것이다. 공자 역시 스스로를 완벽하지 못하며 항상 배우기 위해 분투하는 노력형 인간으로 묘사했다.  

논어에서 쉴 틈 없이 등장하는 주제는 ‘언어’와 ‘행동’이다. 선후(先後)를 따지자면 언어가 선인데, 이는 언어가 생각의 반영임을 알아챈 공자의 통찰력이다. 즉, 언어는 개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개인의 말과 글 자체가 그를 규정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행동이다. 올바른 언어를 갈고닦지 못한 인물은 행동 또한 그릇될 소지가 크다. 겸손, 교양, 도덕, 윤리 등의 진일보된 인간의 행동양식은 언어적 실천으로 시작됨을 강조한다.  

행동주의, 실천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대중에게 어필하는 지도자일지라도 그 언어가 타락했다면 결국 파괴적 행동과 정치적 결과물에 이르게 된다. 이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잠언처럼 느껴지지만, 잠깐이나마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고전의 파괴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명되는 법이다. 비록 그 시간이라는 재원은 유한하여 삶의 말미에 그 미묘한 이치를 깨닫는 안타까운 순간이 있지만….  

가장 천박한 정치언어를 구사하는 곳은 김정은 독재정권이다. 지난 4월 23일 북한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전화 통지문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조준한 듯 무력 도발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원숭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철부지 계집애’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했다.   

북한의 협박성 언어는 주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전파된다. 최근 들어 사용되는 언어의 천박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짓부수고’ ‘억세게’ ‘승냥이는 몽둥이로’ ‘아양 떠는 삽살개’ ‘제 집안에서나 조잘대며 횡설수설하는 아낙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천박한 언어를 제조해 내는 기술력과 창의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필자는 김정은에게 고운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어를 읽게할 묘안에 대해 생각했다. 양질의 고전을 숙독(熟讀)한다면 그 천박한 ‘언어’와 ‘행동’이 조금이나마 순화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에서다. 중국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북한이니 중국의 고위층 인사가 북한을 방문할 때 김정은에게 논어를 선물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듯하다. 마침 중국은 부정부패에 맞설 명분으로 공자의 사상을 자주 차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정은이 논어를 찬찬히 읽어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독재체제 유지와 기울고 있는 국가를 바라보며 한숨지을 그에게 ‘변화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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