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한에 억류된 두 명의 미국 여기자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8월 5일 가족과 재회하게 되었다. 인터넷 사이트 facebook을 통해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였던 미국 내 촛불집회에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던 필자로서는 유나 리(Lee), 로라 링 두 기자가 오로지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두 기자의 행복한 무사귀환이 클린턴의 방북으로 인한 밝은 면이라면, 이번 사건에는 어두운 측면 역시 없지 않다. 특히 한국의 일부 언론과 정치계의 반응은 단순히 ‘어둡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착잡함의 극치였다. 왜 그러할까?
이번 사건의 전후 사정이 알려지면서 김정일의 두 기자 석방의 본질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고상하게 표현해서 ‘인질 외교’,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람 장사’였다.
명색이 국제법적으로 주권국가인 북한의 실질적 수장이라는 자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힘없는 두 여성에게 12년 중노동형을 선고하여 그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미국 전체를 경악에 빠지게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 이 두 여성에게 “클린턴이라면 석방될 수도 있다”라는 메시지를 가족에게 전하도록 꼬여낸 후, 이를 미끼로 클린턴의 방북이라는 외교적 ‘강제추행’을 연출한 것이다.
‘일을 마친 후’ 웃는 김정일과 무표정한 클린턴을 찍은 사진을 보면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추행 정권’의 수준이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걸래는 빨아도 걸래’이듯, 조폭 두목이 1병에 1만 불짜리 포도주를 마구 부어대고 각종 명품차와 명품 요트로 치장을 하여도 결국 조폭 두목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이 김정일과 그의 일당의 수준이다.
정치범을 ‘사오기 위해’ 동독 정권과 비공식적으로 협상하였던 과거 서독의 인사들은 동독의 행태에 “구역질이 나왔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동독의 판사들은 정치범들에게 중형을 내리면서 내심으로는 “2~3년 감옥에서 썩으면 서독이 사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행태는 동독의 정치범 팔아먹기를 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물론 김정일은 대북제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클린턴 방북이 갖는 대내외적 파장을 의식하면서,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클린턴의 방북을 국빈 방문, 아니 미국이 ‘수령 김정일’에게 사과를 위해 보낸 사절단으로 포장하여 방송과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나아가 미 대통령 오바마가 그 어떤 ‘메시지’를 김정일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II.
특히 한국좌파 언론과 정치계의 반응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백악관이 곧바로 부인한 ‘오바마 메시지의 존재’를 한국의 언론은 좌우할 것 없이 인용부호 조차 없이 대서특필하였다. 또 친북좌파 정치인들은 클린턴이 두 여기자를 데려오기 위해 방북한 것을 기화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리기로 넘어갔다. “미국은 결국 한국의 머리 넘어 북한과 담판을 할 것이고 한국정부는 왕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곧바로 6.15와 10.4를 인정하고 올인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입만 열면 복창(復唱)하는 “우리민족끼리”와 “자주”는 어디 가고, 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의 특수 목적을 띤 방북으로 인해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좌지우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더 가관인 것은 바로 클린턴의 방북, 즉 김정일의 인질외교 성사에 조언을 하였다는 사람이 바로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두 여기자의 안위도, 민족의 품격도 이들의 관심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김정일 정권의 안위와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 빠지는 것에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한국의 친북좌파의 수준이다.
심지어 개성공단에서 130일이 넘게 납치된 유씨와 항해장비 고장으로 월경한 연안호의 석방에 한국정부가 미국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질외교의 실상을 본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역도 패당 이명박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식물정권으로 만드는 것을 대남정책의 공개된 목표로 내세운 김정일이 이명박 정부의 업적으로 남을 수도 있는 유씨와 연안호 석방요구에 호응하겠는가? 차라리 김정일은 한국의 친북좌파 정치인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유씨와 연안호를 이용할 공산이 훨씬 크다.
III.
클린턴의 방북이 과연 대북제제 완화와 미·북 양자회담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불필요한 억측을 할 필요는 없다. 미국정부는 일단 클린턴 방북과 북핵문제의 연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분명한 점은 강화된 유엔 대북제제에 주도적 역할을 한 미국이 김정일의 인질외교에 넘어가 거꾸로 제제완화에 나선다면,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순식간에 자유낙하할 것이다. 또 이란과 같은 핵개발 국가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는 김정일식 인질외교의 모방일 뿐이다.
설사 만에 하나, 클린턴의 방북과 오바마의 대북정책 변화가 그 어떤 방식으로든 인과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정부는 한국외교의 무게를 걸고 이를 반대해야 한다. 이제 한국외교에 필요한 것은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평화의 중심이라는 국제적 위상에 상응하는 국격의 확보이다.
작년 광우병 사태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다다르고, 미국과 재협상을 추진하라는 야당과 국민들의 비이성적 요구에 대하여 “그래도 국격이 있다!”라는 말을 내뱉은 한국의 한 외교관이 있었다. 지금 바로 이러한 냉철함과 무게가 한국의 언론과 정치계에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품격 제로(0)인 김정일 외교의 추이를 살피면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김정일 정권과 이를 추종하는 한국의 친북좌파의 행태와 요구는 경멸해야 한다. 국격의 확보와 외교적 무게만이 김정일 정권의 붕괴로 야기될 전환기의 혼란을 한반도 평화의 토대로 주조(鑄造)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