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후 韓美정상회담과 북핵

참여정부 이후 세차례의 한ㆍ미정상회담은 북핵문제가 위기로 치달을 시기에 열렸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북핵 문제가 위기로 치달을 때마다 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회담 개최로 이어진 것이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얘기다.

네번째 정상회담도 당초 7월 하순으로 검토됐으나 북핵 문제가 화급하다는데 양국의 인식이 일치하면서 6월 11일 개최로 앞당겨 졌다는 후문이다.

그간 세차례 정상회담의 공통점은 회담 전 북핵상황이 악화일로였으나 회담 후 ‘진정’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점이다.

우선 첫번째 회담(2003.5.15)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면 2002년 10월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2003.1.10)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의 북핵문제 안보리 보고 결의안 채택(2003.2.12)으로 위기가 한껏 고조됐던 게 그 배경이다.

중국의 중재로 그 해 4월23∼25일 베이징에서 북ㆍ미ㆍ중 회담이 열리기는 했으나, 북한의 잇단 상황악화 조치에 대해 미 행정부가 실제 물리적인 대응도 검토했던 시기였다.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대북 군사적 제재 선택 가능성 발언이 그런 상황을 잘 반영한다.

더욱이 그 즈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북핵문제에 한미 입장이 똑같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겉으로는 이견이 없는 것처럼 쉬쉬하며 가느냐, 공개적으로 이견을 나타내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 한미간 ‘이견’이 공론화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참여정부의 첫 한ㆍ미정상회담 결과는 괜찮았다.

북한의 추가적인 상황악화에 대비해 단호한 대처방침을 분명히 하면서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한미 양국의 그 합의는 그 해 8월 27일 역사적인 1차 6자회담으로 이어졌다.

태국 방콕에서의 두 번째 정상회담(2003.10.20) 전 분위기도 썩 좋지 않았다.

1차 6자회담의 후속회담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그 해 10월2일 북한이 기존에 보관중이던 폐연료봉의 재처리 완료를 완료했으며 이를 핵 억제력 강화방향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다고 위협한 탓이다.

그럼에도 한미 양국은 회담에서 2차 6자회담의 조기개최 필요성에 공감하고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을 해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대북 안전보장을 문서화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세번째 정상회담(2004.11.20)도 전후 상황은 유사했다.

북한은 미 대통령 선거를 이유로 그 해 6월의 3차 6자회담에서 약속한 4차 6자회담 개최를 거부했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한이 미 대선 영향을 주기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이른바 10월위기설(October surprise)이 나돌면서 위기가 고조될 대로 됐던 시기에 회담이 열렸다.

이라크전 종전 등의 국제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집권 2기의 부시 대통령이 1기 집권 시작 때처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기존의 대화를 통한 외교적, 평화적인 북핵문제 해결에서 강경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한에게는 전략적 결단을, 미국에게는 전향적 선택을 요구하는 노 대통령의 요구에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 틀 속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원칙의 재확인으로 화답하면서 국내외의 대북 군사행동 등의 극단적 우려를 잠재웠다.

다음 달 11일로 예정된 네번째의 회담도 예외는 아니다. 단연 북핵문제가 핵심의제가 될 전망이다. 이전과 비교해볼 때 상황이 더 악화된 탓이다.

이미 다자대화의 틀인 6자회담이 다음 달로 중단 1년을 맞게 되는데도 후속회담 이 개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2.10 핵무기 보유 발표에 이은 3.31 핵군축회담 제안을 하고 나서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영변 5㎿원자로를 가동중단한데 이어 8천여개의 폐연료봉 인출하는 등 재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 일본 내에서는 최근 잦아들기는 했지만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공공연하게 제기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가 아닌 압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미일 양국의 외교안보 라인에서의 5자회담 주장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끝내 6자회담을 거부할 경우 북한을 뺀 한.미.일.중.러의 5자회담이라고 열어 ‘5대 1’ 압박구도로 가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 시기는 대화를 유지하느냐 압박으로 가느냐의 고비인 셈이다.

정부는 일단 북한이 6자회담 문턱까지는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8일 최종 결심을 위해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했고, 이에 미 행정부가 13일 직접 뉴욕접촉에 나서 긍정적으로 화답한데 대해, 22일 북한이 뉴욕접촉 사실을 확인하고 때가 되면 답을 주겠다고 공식으로 밝힌 것이 그런 판단의 배경인 듯 하다. 북한은 미 행정부의 추가적인 ‘액션’을 기대하는 눈치다.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이 다음 달 11일 한ㆍ미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고 6자회담 복귀여부에 대한 최종결심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번째의 한ㆍ미정상회담이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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