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해진 탈북자 송년회 풍경

한 해를 정리하면서 탈북자 단체들이 연이어 송년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4일 백두한라회를 시작으로 <탈북자동지회>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숭의 동지회> 등이 28일부터 연쇄적으로 송년회를 갖는다.

낯선 남한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송년회 자리는 탈북자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던져준다고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탈북자 단체 송년회 진행형식은 남한 송년회와 유사하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북한의 예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먼저 대표가 나서 한 해를 돌아보며 이번 해가 탈북자들에게 던져준 의미에 대해 인사말을 하고 단체 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연말 ‘총화’를 실시한다. 이후 회원들끼리 술잔을 돌리면서 각각의 건강과 안부를 기원하는 시간을 갖는다.

송년회 자리에서 만난 백두한라회 회원 김기남(32)씨는 “북한에서도 기업소나 농장별로 ‘연간결산모임'(사회단체는 연간총화모임)을 갖는데 그 형식은 남한 회사의 송년모임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씨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연간총화모임에서 지배인이나 당 책임비서가 “위대한 수령과 김정일 장군의 배려로 한해를 잘 마무리했으니 내년에도 좀더 힘을 내서 매진하자”고 말한 뒤 일년결산을 갖고 공식모임을 간단하게 끝마친다고 한다.

김씨는 “공식모임을 마친 노동자들은 작업반별로 나뉘어서 개인집을 지정, 송년모임을 갖는데 그때부터 음식이나 술을 마시면서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의하면 송년회에는 보통 돼지 1마리를 잡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뒤부터는 식량난이 심해져 돼지를 잡는 모습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들의 송년회에서 주로 나오는 이야기는 남한사회 적응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그만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이번 송년회에서는 아무래도 통일부의 탈북자 수용대책이 주된 이야기꺼리다. 한국행을 위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브로커 문제 때문에 정착금을 삭감하는 것에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변의 소식들을 안주삼아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과거에는 탈북자들 술자리가 2차, 3차로 이어지는게 다반사였으나 최근에는 절제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탈북자들 송년회 모임에서는 의외로 북녘에 둔 가족이나 고향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힘든 남한 생활 적응이야기가 주로 화제에 오른다. 송년회에 참석한 김순이(33세)씨는 “가족이야기 할때면 마음이 아파서 다들 이야기 하기 꺼려 한다”며 “언제 고향에 갈지도 모르고 남한 생활이 힘든 상황에서 그럴 여유를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올해 탈북자 단체 송년회는 여느 송년회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힘든 넋두리를 진한 술과 든든한 인정으로 감싸안는 자리였다. 자유와 생존을 찾아 한국땅을 밟은 이들에게 아직도 삶은 힘들고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송년회를 마치고 저마다 집으로 향하는 그들은 대한민국은 여전히 희망의 땅이라고 말한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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