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회담 타결 의미와 남북관계

나흘간에 걸친 협상끝에 19일 공동보도문을 내놓은 남북 차관급회담은 10개월간 중단된 남북 당국간 대화의 맥을 다시 잇는 결실을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 공동보도문에 북핵 문제 명시 여부를 놓고 논란 끝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는 상징적인 문구로 대신한 점은 아쉽지만 최근 한반도 상황에 비춰 북핵 문제 해결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공동보도문은 합의사항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에 평양에서 열리는 통일대축전 행사에 장관급 대표단을 파견하고 ▲제15차 장관급 회담을 6월 21∼24일 서울에서 개최하며 ▲봄철 비료 20만t을 오는 21일부터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가운데 6.15 장관급 대표단 파견과 장관급 회담 개최는 남북관계 복원을 앞당기는 측면에서, 인도적 차원의 비료지원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측을 돕는다는 동포애적 측면에서 각각 그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우선 줄다리기 끝에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의 날짜를 잡은 것은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작년 7월 이전으로 되돌리는 작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머물지 않고 남북 대화의 연속성을 보장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차관급 회담이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의 물꼬를 텄다면, 장관급 회담은 적십자회담과 장성급 군사회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다양한 남북 대화의 틀을 복원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장관급 회담은 6.15 남북 공동선언 이행의 중심 협의체이며 6.15공동선언은 장관급 회담 탄생의 비밀”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관급회담은 6.15 장관급 대표단 파견 문제와 맞물리면서 시기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지만 14∼17일 열리는 평양 6.15 행사 나흘 뒤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함께 장관급 대표단 파견 합의는 오히려 장관급회담에 앞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본격적인 복원을 위한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단장으로 유력시되면서 대통령 특사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해 10개월간 묵은 앙금을 씻어내는 동시에 북핵 문제까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행사가 북측이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만큼 2000년에 이어 남북관계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하는 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북핵 문제를 놓고 주변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행사가 끝난 뒤 나흘 뒤 열리는 장관급회담과의 시너지효과도 기대된다.

이 때문에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이른 바 3대경협 사업에 윤활유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대화 중단 이전보다 진일보하는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핵 문제의 경우 상징적인 표현으로 언급되는 수준에서 합의하면서 실망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할 만큼 했다”고 보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수석대표를 맡았던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합의 직후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북핵문제였다”라며 “하지만 합의문에는 (우리가 전달하고 촉구한) 모든 내용을 담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다소 미흡하기는 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이 다같이 노력한다는 말이 이를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북핵 문제를 명시하자는 우리측 입장에 맞서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문구를 집어넣자고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막판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북측은 이번 회담을 핵 문제를 다루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 `실무회담’이라고 규정하면서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그동안 핵 문제를 다룬 적이 있는 장관급회담이라면 몰라도 `실무회담’에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인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회담기간 수 차례에 걸쳐 북핵 문제의 조기 해결이 필수적이라며 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복귀할 경우 `중요한 제안’까지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만큼 끝까지 고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간신히 재개된 남북 대화의 모멘텀마저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6월 장관급 회담에서 재논의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비료 문제의 경우 당초 북측은 50만t 지원을 촉구했지만, 예년의 봄철 지원 수준인 20만t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나머지 물량은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하기로 미뤄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시기는 모내기철이 시작된 북측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해 불과 이틀 뒤인 21일 경의선 도로를 통해 첫 수송을 시작하고 해로를 통해서는 오는 25일 첫 선박을 보내기로 했다.

게다가 비료수송을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북측 선박을 이용키로 한 점도 남북 해운 물류 수송망 구축에도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모내기철이 시작된 북측이 신속한 지원을 절박하게 요구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등에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이 적지 않은 점을 들어 6월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선에서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측이 제안한 나머지 의제인 8.15에 즈음한 이산가족 상봉과 경의선ㆍ동해선 도로개통 및 철도 시험운행 등은 이번 회담에서 큰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6월 장관급회담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이산가족 상봉과 도로개통식 등 미합의 사항은 제15차 장관급회담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다른 남북대화의 재개 방안도 검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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