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삐라만 생각한다면 쌍팔년도 얘기죠.”
대형 풍선에 매달려 북한으로 날아가는 탈북자 단체의 전단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DVD 형태로까지 진화해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풍선을 활용한 민간 대북전단 운동의 원조 격인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는 26일 “올해 들어서부터 종이 전단 외에도 DVD 영상물을 제작해 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함께 날려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탈북자인 이 대표가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백령도, 강화도, 철원을 돌며 3차례에 걸쳐 북쪽으로 날려보낸 `DVD 삐라’는 400장 가량.
풍선을 날려보내는 `운송책’은 이 대표지만 DVD 콘텐츠 제작에는 보다 많은 단체가 참여했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단파라디오 `북한개혁방송’은 작년 11월 발발한 대청해전의 진상을 다룬 `서해 무장충돌의 진실’ DVD를 자체 제작했고, 이 대표도 별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화 생활을 다룬 DVD를 만들었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이 무슨 수로 `DVD 삐라’를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 법하지만 의외로 많은 북한 주민이 어렵지 않게 DVD를 가정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IT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최근 탈북한 여러 사람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도시는 이미 70∼80% 가정에 DVD플레이어가 있고 DVD 시청이 가능한 컴퓨터 보급률도 상당하다”며 “군대조차도 소대마다 DVD플레이어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신문지 정도 크기의 종이였던 `삐라’가 4.7 기가바이트(GB)의 막대한 정보량을 담을 수 있는 `DVD 삐라’로 변신한 것은 대북 전단운동에서 `일대 혁신’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이 대표는 “DVD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북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며 “영상까지 보게 되면 북한 사람들이 내용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은밀히 무한 복제되며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DVD가 손상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게 하려고 이들은 각고의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DVD를 손수 `굽고’난 뒤 일명 `뾱뾱이’라고 불리는 완충재 에어캡으로 정성들여 포장한 뒤 다시 공기 저항을 크게 만드는 종이를 날개처럼 붙인 방식을 고안해낸 것이다.
김 대표는 “고층 건물에서 떨어뜨리는 실험을 해 봤는데 처음에는 중력에 의해 가속이 되다가 나중에는 종이 때문에 저항을 받아서 등속으로 떨어졌다”면서 “땅에 떨어진 DVD를 컴퓨터로 돌려봤으나 시청에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여러 주제의 DVD 삐라를 추가로 제작해 한 타이틀당 1천장씩 북한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전단 보내기 운동에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