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대의원 대회에서 민노당과의 진보통합정당 건설 합의안이 부결됐다. 놀랍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2002년 17대 총선에서 대거 원내 진입에 성공했을 때 민노당이 자생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아서 재야 극렬세력이 아니라 제도권으로 진입한 책임 있는 정책 정당, 더 나아가서 건전한 수권정당으로 커 나가길 기대하는 글을 썼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철저히 부서졌다. 민노당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사회는 자생적 진보정당인 민노당이 커나갈 토양이 비옥한데도, 왜 이런 실패를 맛볼까? 그 이유는 민노당이 아직도 20세기 스타일 진보 정당의 한계를 한 치도 못 벗어났기 때문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민노당이 발전하려면 세 가지 사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정당 왜 진보 못하고 있나” 동아일보 2006-06-08).
첫째, 성장·경쟁체제·그리고 세계화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처방전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외면과 종북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민노당은 이 세 가지 점에서 단 한 치의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는 나락으로의 추락이었다.
결국 민노당 내 종북주의에 대한 비판이 생겨났었다. 조승수 전(前)의원, 심상정 의원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고, 뒤이어 주대환, 홍세화씨가 가세했고, 나중엔 진중권씨까지 종북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민노당 창당의 산파역할을 한 주대환 민노당 전 정책위 의장은 “민노당은 원래 영국 노동당을 모델로 창당된 당이고, 이 모델의 핵심은 ‘실용적 좌파’인데, 민노당이 국회에 진출한 이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소멸하지 않은 김일성 주의자들이 갈 데가 없으니까 당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노선이 변질됐다”고 말했고, 홍세화 씨는 당내 다수파인 NL계열 ‘자주파’를 ‘광신자집단’ ‘사교집단’으로 비유했다. 진중권 씨는 “종북파는 진보가 아니라 수구 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어서,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의 형식에 ‘기생’하여 종파적, 패권적 행태를 계속 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민노당 내에서 종북주의가 아닌 사람들은 ‘진보신당’으로 분당했다. 그러나 민노당은 이후에도 계속 절망적인 종북노선을 유지했다. 얼마 전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는 과거 운동권 동료였던 이정희 민노당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민노당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 북한보다 대한민국을 더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고,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와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북한인권법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맹비판을 가했다.
그런데 단지 실리적 이유에서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합당이 논의됐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민노당은 전보다 더 종북적인데, 종북주의 때문에 분당한 진보신당이 왜 다시 그들과 당을 다시 함께 하고 투항하려는가. 그것은 원칙에 대한 배반에 다름 아니었다.
과거 주체사상파의 맹장이었고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최홍재 씨는 9월 1일 목요일 오전에 진보신당 당사 앞에서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께 일천배(一千拜)를 드리며’ 온 몸으로 호소했다.
“존경하는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 (중략)저는 20대 때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을 하였습니다. 주변머리가 없었던지 세 차례 감옥생활도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좌파들의 민중에 대한 진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중략)김정일세습체제를 반대하고 북한인권을 위해 싸우는 당원님과 저는 동지라 믿는 것입니다.”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분당했던 사람들이 왕재산 사건이 진행되는데도 고작 국회의원 몇 명 만들려고 북한의 조선노동당 2중대인 민노당과 다시 합당한다면 진보신당은 조선노동당의 3중대가 되는 것이고 결국 한국에서 진정한 진보의 가치는 사라지고 진보의 싹은 사라질 것이라 호소하며 그 더운 날 일천배를 강행했다. 그의 정성이 통하였던가? 진보신당 당원들은 용감하고 현명한 선택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건전 좌파정당의 싹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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