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 요구에 北대응이 해결 첫 고비

북한은 1999년 연평해전, 2002년 서해교전 때도 금강산관광을 중단시키지 않았고 금강산 골프장건설을 위해 군사기지를 옮길 정도였다.

1998년 시작한 금강산관광이 지금까지 10년을 이어오는 동안 남북관계는 크고 작은 정치.군사적 사건들로 부침을 겪었지만 북한이 이런 이유로 스스로 금강산관광의 중단을 시도한 적은 없다.

현대아산의 한 간부는 12일 “1999년 6월의 민영미씨 억류 사건, 2002년 9월 태풍, 2003년 4월 북한지역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 회장의 자살 사건 등으로 금강산관광이 일시 중단된 일은 있으나,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로 관광사업을 중단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금강산관광이 그만큼 북한에 중요한 사업임을 말해준다.

북한은 금강산관광 개시 때 “우리는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을 보고 싶어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간절한 심정을 고려하여 동포애적 심정에서 남조선 인민들에게 금강산관광의 길을 열어 놓기로 하였다”고 주장하고 현재는 “민족 공영을 위한 사업”으로 평가하는 등 금강산관광에 대해 ‘동포애’와 ‘민족공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금강산관광은 무엇보다 달러에 목마른 북한에 ‘달러 박스’이다.

현대측은 금강산관광을 시작한 후 2005년까지 9억4천200만달러의 관광 대가를 매달 일정액으로 나눠 송금하기로 북한측과 합의했다가 이중 4억달러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의 경우 남측이 지불한 관광 비용은 매달 100만달러에 달했으며, 지난해 4월 내금강 관광이 개시되면서 관광객이 크게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현대로부터 받은 초기 관광대가 이외에도 10년동안 1억3천297만달러의 관광수익을 올렸다고 주장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북미관계가 악화됐을 때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개성공단 사업은 인정하겠지만 금강산관광 사업은 중단하라는 압박을 노골화했었다.

북한이 금강산관광 사업을 어디까지나 “민간급 경제협력 사업”이라고 규정, 남한 당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입장을 유지해온 것도 황금알을 낳는 이 사업이 남북간 정치.군사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 것을 최소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논리인 셈이다.

금강산관광 사업 초기 경직된 태도로 남한 관광객을 통제하고 감시하던 북한 안내원들도 점차 서비스 업종에 걸맞게 부드럽고 유연해져 더 많은 관광객을 맞고 기념품 등 관광상품을 더 많이 팔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북한이 금강산관광 초기에는 다소 경색된 태도로 남측 관광객을 맞았으나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열려 관광객이 급증한 뒤부터는 훨씬 친절해졌다”면서 “동족으로서의 남측 사람에 대한 호감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은 피격사망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되더라도 금강산관광 사업을 지속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남측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에서도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과잉대응 책임’에 따른 사과와 남측 조사단의 현장조사 또는 남북공동 조사단의 현장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그리고 재발방지책 강구 요구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해 나올지 주목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와 평화네트워크 등 진보진영의 단체들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에 곧바로 성명을 내고 남북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선 북한 당국의 사과와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과잉대응 책임론에 대해선 사망한 관광객이 군사보호시설에 무단으로 들어간 책임을 들어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진상규명을 위한 남측 조사단의 현장조사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할 때 북한이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가가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이냐 위축 또는 중단이냐를 가늠하는 첫 고비가 될 것이며 이에 대한 판단이 북한의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