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민노당에 “노 땡큐”

진보신당이 4일 민노당과 통합하는 안을 부결시켰다. 좌파진영 내부의 일이지만 전체적인 정치적 의미도 있는 사건이었다. 앞으로 진보신당이 가려는 ‘진보’의 길이 과연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민노당과 일정한 선을 긋겠다는 점만은 일단 드러낸 셈이다.


진보는 어떻게 진보다울 수 있는가? 굳이 긴 말이 필요 없다. 폭압, 인권학살, 세습전제(專制)와, 그것을 추종하는 것은 진보답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진보라면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자는 김정일이라는 넌센스가 성립한다. 진보신당을 포함한 한국의 ‘진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 넌센스를 수긍할 수 있는가? 민노당과 통합하는 안에 부(否)표를 던진 진보신당 당원들이 만약 “수긍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면, 그것은 남 아닌 그들 자신을 위해 당연한 선택이었다.


세계 좌파 역사상에는 공산주의와 의회주의적 사회주의의 노선투쟁이 항상 있어 왔다. 서유럽에서는 후자가 주도권을 잡았고, 러시아에서는 멘셰비키의 패배와 더불어 전자, 즉 볼셰비키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랬다가 80년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한반도에서는 북(北)에는 볼셰비키가 들어섰고, 남(南)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섰다. 6·25 남침이 격퇴된 후로는, 김일성-김정일의 지하조직과 자생적 종북 계열은 남쪽의 현실정치와 사회운동에 편승하는 전술로 나왔다. 진보 정당-사회단체에 파고들어 그 주도권을 야금야금 잠식하는 수법이다. 민노당이 그렇게 해서 NL 수중으로 넘어갔다. 자유민주주의와 비(非)전체주의적 진보로 시작한 남한 사회운동도 80년대 이후로는 다분히 NL 헤게모니로 넘어갔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민노당이 1중대, 민주당이 2중대, 한나라당이 3중대라는 식의 우스개 소리가 결코 우습지만은 않은 세평(世評)으로 회자(膾炙)될 정도로 한국 정치지형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 만큼 종북 신드롬이 한국정치의 한 공공연한 세(勢)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남한의 좌파가 김정일 노선으로 몽땅 빨려 들어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마다하는 좌파가 그 나름의 비(非)평양적인 독자 위상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 이번의 민노당-진보신당 통합안에 걸려 있었던 셈이다. 이것이 지금 시점에서 어떻든 부결되었다. 이로써 ‘종북 배척’이라는 논제(論題)가 범좌파 내부에서 소멸하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을 여지가 생겼다. 민주당에도 NL 계열이 들어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출신성분’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레퍼런스(reference,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는 표결에 앞서 진보신당 당사 앞에 찾아가 “진보의 영혼을 종북파에 팔아넘기지 말라”며 1천 배 1인 퍼포먼스를 가졌다. 맞다. 진보이고자 하는 파우스트적 영혼을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김정일이라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겨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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