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從北비판 옳아…’脫金시대’ 좌익이 할일은?

요즘 민주노동당에서 심각한 내부 위기가 생겨서 북한 독재를 반대하는 세력이 지금까지의 親평양 입장을 날카롭게 비판하기가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것은 참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된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좌익세력에 비판적인 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이 꿈꾸는 사회개혁을 시도한 적이 많았지만 그 시도의 결과는 거의 빠짐 없이 경제침체나 관료주의 강화, 극단적인 경우 참혹한 독재였다. 한국에서 좌익세력이 자신을 “진보파”로 묘사하지만, 20세기 역사의 교훈과 현대 세계의 경향을 보면 그들의 사상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참된 사회적 진보의 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도 물질적 평등을 강조하는 좌익사상은 인간 정신에서 뿌리가 깊어서 양식은 좀 달라질 뿐 수백 년 후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좌익세력은 현대사회를 지도한 경험이 너무 실망스럽지만 주류 사회를 비판하고 시장경제의 극단을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균형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좌익세력과 사회주의 사상이 완전히 없는 세계는 가능하지도 않고 또 한편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도전 중에 북한문제 해결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해 보면 남한에서 북한체제에 환상을 갖고 있진 않지만 좌익사상을 유지하는 정치세력의 탄생은 앞으로의 북한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20여 년 후의 북한이 어떻게 될까 고민하면 2개의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북한에서 친중국 개발독재 정부의 탄생이며, 또 하나는 체제붕괴가 초래할 대한민국의 흡수통일이다. 첫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세월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두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아직은 더 높다. 독일식 완전통일도 가능하고, 연방제를 통해 관리하는 미완결 통일도 가능하다.

남북 통일은 민족의 모든 어려움을 기적적으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장기적인 과도기의 시작이란 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일 후 남북한 사람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는 북한의 경제와 사회의 복구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쉽지 않고 많은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 통일 후 수십년 동안 지금 1960년대 수준인 북한사회는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북한 복구사업은 남한의 기술, 인재, 자본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과도기는 어려운 사회 문제점과 심각한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새로운 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우익도 좌익도 서로 비판하고 서로 다른 해결방법을 모색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좌우익이 같이 이 장기적인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

脫김정일 시대에 좌익도 할일 있을 것

북한 복구사업에서 좌익세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다양하겠지만 북한 노동운동 만큼 중요한 사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북한 관영 선전매체는 자신을 “근로 대중 국가”라고 큰소리치지만, 북한사회 현실은 신분제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연구하는 차문석 박사가 소련식 사회주의를 “反노동 유토피아”라고 했는데, 이런 성격은 김일성의 북한에서 더 뚜렷이 나타났다. 북한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나 파업의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고 보호할 최소한의 수단마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체제가 무너진 다음에 중국과 경쟁하기 어려워진 남한의 중소기업을 비롯한 외국기업은 북한에 진출하면서 북한 근로자들을 ‘싼 노동력’으로 쓰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이러한 투자 덕분에 수많은 주민들의 생활이 좋아지고 북한 지역의 경제가 활발해질 것이다.

남한기업이 싼 월급으로 여기는 임금 수준은 북한의 보통 수준보다는 매우 높아서 이들 공장 근로자들이 먼저 만족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 그래도 남한의 기준으로 보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전태일 사건 때 동대문 시장과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실제 소득이나 노동의 안전은 金父子 시대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탈김(脫金, 탈 김정일) 시대의 북한 노동자들에게 비교가 되는 대상은 그 전의 ‘100일전투’나 ‘고난의 행군’ 때에 경험했던 고생이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즐기는 생활 그리고 서울에 있는 공장의 노동조건이 될 것이다. 공식적인 국가통일을 이룩하지 못할 경우에도 남한이 같은 민족이니까 이같은 비교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근로조건에 어느 정도 불만을 느끼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물론 기업가들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면 성장이 느리게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근거가 없지 않지만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을 물건을 생산하는 생물적 존재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도덕적인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냉정한 정치적인 입장에서도 위협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남한보다 어려운 조건 하에서 노동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남한의 생활과 비교하면서 남한 출신인 기업 소유자와 경영자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전체 남한 사회를 이른바 ‘착취세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것은 통일 후 거의 불가피한 문제로 보이는 남북의 정신적, 문화적 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탈김시대가 오면 북한에서 노동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과제이다.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 직면할 문제와 도전은 1970-80년대 남한 노동운동가들이 해결해야 했던 문제와 비슷할 것이다. 북한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 및 노동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북한 노동운동에서 북한출신 노동자들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들은 경험과 지식이 모자라서 초기 단계에서 남한 출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경험을 이용하여 북한사회는 초기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을 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남한 좌익진영이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들은 1970-80년대에 남한 노동운동에 직접참가하지 못했다고 해도 풍부한 전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이 전통은 탈공업화 시대에 들어간 남한에서는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일 체제 붕괴 이후에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경험할 것 같은 북한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북한 노동운동과 노동단체들이 남한 좌익진영으로부터 이러한 지원을 받는 것은 남북의 완전한 사회적 통일에 이바지는 요소로 볼 수도 있다. 북한 여공(女工)들에게 남한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싼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시키는 ‘주인’만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나 노동조합의 고문일 경우, 그 여공들은 남한을 북한 지역의 약점을 착취하는 사회라고 인식하기보다 북한을 도와주는 같은 사회의 한 부분으로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 사람들은 노동운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파업을 할 수도 있고, 재판을 통해 지지를 얻을 수도 있고 간부들의 결정을 반대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공산주의 독재시대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자유사회에서 자신의 개인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 찬양한 사람들, 항구적인 명예손상 받을 것

물론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김정일 독재를 대체할 수 있는 정권은 흠수통일 후의 민주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중국의 공작이 초래할 친중국 권위주의 정권을 상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북한에서는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또 하나의 자본주의 개발 독재이다. 현재 중국은 인권 조건도, 노동운동 조건도 쉽지 않지만 김정일의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북한에서도 이러한 개발독재 정권이 탄생한다면 북한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물론 흡수통일 시나리오보다는 많이 어려운 상태에서 노동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 조건하에서는 노동운동이 가능해지니까 남한 좌익진영에서 여러 형식으로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체제가 무너진 다음, 좌익세력은 북한 서민들을 남한자본에 의한 착취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 대한 착각으로부터 자신의 의식을 아직 해방하지 못한 NL계와 같은 친북 세력은 이러한 의무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들은 북한이 ‘지상낙원’인 줄 아는데, 북한의 참극적인 현실을 자기 눈으로 본 다음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 타격에 대한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에서 어느 정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본 적이 있다.

1950년대 중반까지 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영향이 컸다. 수많은 유럽 지식인들은 소련 독재자 스탈린을 이념화했고 소련국가를 지상 유토피아로 봤다. 물론 그들이 소련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의식은 소련 선전출판물을 읽거나, 아니면 스탈린의 특무경찰의 보호와 감시 하에 소련을 단기 방문을 했을 때 얻게 된 왜곡된 지식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실제 소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칭 ”진보 지식인”들은 소련당국의 선전을 녹음기처럼 반복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 시대의 기근과 숙청의 증거를 “보수파의 위작물”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드디어 1956년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스탈린 시기의 테러(숙청)의 규모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 1950년대 말부터 소련 출판물에서도 스탈린의 테러정책과 기근을 비롯한 ‘경제 오해’에 대한 증거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서양의 자칭 “진보 지식인들”에게는 깊은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에서 탈당했다. 탈당자 가운데는 나중에 죄책감 때문에 모든 정치적 활동에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고, 극우 입장으로 가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민족주의나 종교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느 프랑스 교수나 영국 기자에게 소련은 멀고 먼 나라, 개인적 관계가 없는 나라, 말과 문화를 모르는 나라일 뿐이었다. 그들은 1956년 이후에도 스탈린의 숙청과 살인적인 기근에 대해 책이나 신문에서만 배울 수 있었다.

남한의 경우 NL과 같은 친북 세력은 자기 눈으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와 북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게 되면 더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 후에 그들이 과연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또 김일성, 김정일 살인적인 독재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적이 있는 남한 친북세력은 탈김 시대에 북한 주민들의 신뢰를 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친북 매체에서 ‘북한의 번영과 행복’을 선전하는 사람들은 자기자신은 주관적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 인민들이 보기에는 ‘바보’가 아니면 ‘거짓말쟁이’란 것은 확실하다.

지금 친북 출판물에 나오는 논문은 나중에도 누구나 볼 수 있는데, 그 저자들은 앞으로 항구적인 명예의 손상을 입을지 모른다. 북한 인민들은 그들이 주사파 출신이니까 영원히 믿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볼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부자 정권을 찬양하지 않고 그 살인적인 독재에 아무런 착각이 없는 좌익세력이 강화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필자는 물론 그들의 장기적인 목표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소련과 동유럽을 스스로 체험한 필자는 좌익세력이 지향하는 사회 모델이 야기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류사회에서 좌익세력이 있다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르지만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 좌익세력은 통일문제 및 통일 후 복구사업 문제를 해결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데일리NK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