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南정권, 핵포기 환상에 北체제변화 견인 실패”

북한의 기습적인 5차 핵실험을 두고 난데없이 보수 대(對) 진보 진영 간에 ‘북핵 책임론’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이른바 ‘햇볕정책’과 ‘대북강경책’으로 나뉘는 지난 20년간의 대북 정책을 두고 북핵 억지에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상황인 것.

일단 핵실험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야권의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이 강행한 다섯 차례의 핵실험 중 네 차례가 두 보수 정권 때 이뤄졌다면서 야권이 아예 ‘보수 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지 못하고 되레 핵개발을 위한 투자에 악용됐다는 반격도 만만치 않다.

다만 기존 대북 노선에 대한 자성과 재고 차원에서의 비판은 있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북핵 억지에 모두 실패했다는 점에서 양 진영 간의 책임 전가가 생산적인 동력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가시화된 북핵 위협에 대응책을 세우기도 전에 국론 분열부터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 김 씨 일가가 강력한 핵무기 보유를 체제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보루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북한의 핵무장 전략은 우리의 대북 정책과는 무관하게 추진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외부의 영향보다는 체제 결속 등 내부 요소에 의해 핵무기 개발이 지속 추진됐다는 지적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3일 데일리NK에 “북한이 아예 ‘핵 보유 전략’을 갖고 가기 때문에 사실상 햇볕정책이든 강경정책이든 북핵을 억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 “북한은 특히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체제가 불안정해지자 ‘핵 협상 전략’마저도 ‘핵 보유 전략’으로 바꿨고, 리더십이 부족한 김정은이 후계자 지위를 얻으면서 이 전략은 더욱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어 “햇볕정책 당시 그나마 북핵 협상이 이뤄졌던 건 아직 핵 개발이 고도화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북한도 핵 개발 과정 자체를 담보로 (한미와) 협상할 의지가 있었던 것”이라면서 “‘핵 보유 전략’으로 바뀐 뒤부터 북한은 협상조차 없이 핵무장 일변도로 가고 있다. 즉 북한의 핵무장은 핵전략의 변화로 인한 것으로 봐야지 대북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호 강원대 초빙교수(前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장)도 “역대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모두 실패한 셈”이라면서 “진보 정권 당시엔 북한이 핵 개발 단계였으니 핵실험 횟수가 적었던 것이고, 보수 정권 때는 핵 개발이 완성됐으니 핵실험을 자주 한 게 아니겠느냐. 이걸 두고 특정 정부만을 탓하는 건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비확산 관점에서 봐도 소위 핵보유국이라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마저 북핵 억지에 실패했다”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핵 개발에 사활(死活)을 걸던 북한은 결국 5차 핵실험으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그럴 동안 막연히 북한의 붕괴를 예단하고 ‘통일 대박’만 기대했으니 북핵 억지가 제대로 됐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대신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으로 일관한 20년간의 대북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핵 방치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정권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나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란 예단이 북핵 심각성을 가려왔다는 진단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 교수는 “지난 20년간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구조적인 틀에서 파악하고 추진된 게 아니라 주로 대통령의 개인적 비전, 심지어 잘못된 비전에 의존해서 이뤄졌다”면서 “특히 햇볕정책 당시 북한과 기능주의적 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나, 이에 이념적인 논쟁만 붙이려 했던 시도들이 결과적으로 북핵 방치의 원흉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억지를 위한 주변국과의 공조 역시 실패로 보는 평가도 많다. 홍 교수는 “우리는 중국의 의도를 읽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도록 놔둠으로써 우리가 중국에게 부탁하고 매달리도록 만들려 했던 것”이라면서 “결국 중국은 북한을 이용해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늘 중국의 ‘말’만 봤지 ‘행동’을 보지 못해 북핵 억지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도 “중국은 자기네가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없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북중 동맹은 여전히 살아있다. 각자가 제3국에게 침략 받으면 즉시 군사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정도의 관계인데 영향력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라면서 “즉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못 막은 것을 넘어 은근히 즐긴 셈이다. 보수·진보 진영이 대북 인식을 두고 서로 싸우기 전에 주변국 입장부터 살펴야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체제에서 결코 핵 포기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제재와 고립 일변도의 대북 전략만으로는 북한의 셈법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 독재 체제의 존속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체제 변화 나아가 체제 전환을 가져올 전방위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제기된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핵 포기 촉구에 설득당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전략을 바꿔야 한다”면서 “핵에 집착하는 김정은이 오히려 북한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점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엘리트들도 비핵화 정권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을 뿌리째 뽑을 수 있도록 입체적인 전략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도 “경제 제재가 효과를 보려면 중국이 움직여야 하나, 중국은 절대 북한이 무너질만한 결정적인 제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때문에 북한의 정보화를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군사 분계선에서의 대북확성기 방송뿐만 아니라 대북라디오방송, 북한 내 휴대전화를 활용한 한류 확산 등 정보의 환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 “기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조금 더 노력하면,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 내부에 정보를 유통시킨다거나 또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통한 정보 확산을 유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도록 하는 압박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기 전에는 핵문제를 풀 수 없다는 지난 시간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이 외부에 틈새를 보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대화법’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을 아래로부터 변화시키겠다고 한다면 일단 내부에 정보를 침투해야 하지 않겠나. 북한의 틈새를 연다는 차원에서 국제사회로 견인하자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만 하면 내부에 정보가 들어갈 여지도 줄어든다. 제재도 하되 북한을 비집고 들어갈 협상 전략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