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이 사람 차별하고 ‘南北 인권’ 구별하더냐?

최근 불교인권위원회(공동대표 진관·지원·한상범)가 얼마 전 우리 정부가 UN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성명서까지 내면서 “북한에 대해 그 어떠한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사주에 의한 민족 불신 조장과 대결 상태를 조장하려는 민족분열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미국을 “인간을 증오하고 인간을 경멸하는 자본주의 양키들”이라면서 “많은 나라들에게 자국 국민들의 요구와는 무관하게 ‘미국식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인권을 자본주의적 잣대로 체제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그것은 민족 화해의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며 민족 대단결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기가 찰 노릇이다. 세상에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한 땡초들이 어디 있는가? 이러고도 ‘불교인권위’라는 이름을 갖다붙일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그냥 묵과하기 어렵다. 이들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태도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승려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인권문제는 근본적으로 인종, 성별, 종교, 민족, 빈부, 사회제도, 정치 신념 등 모든 사회적 제조건들을 초월하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이것은 초중등학교 교육만 받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인권문제에 불교 인권이 따로 있고 기독교 인권이 따로 있는가? 하물며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민족화해’에 찬물을 끼얹는다니? 인권은 인종 민족 종교를 다 초월하는데, 거기에 ‘민족 화해’와 ‘민족 대단결 정신’이 왜 끼어 드는가? 인권문제에 남한 사람, 북한 사람 잣대가 달라지는가?

그럼에도 이들이 성명서랍시고 내놓은 너절한 종이 쪼가리에는 “인권을 자본주의적 잣대로 체제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도 ‘논리’랍시고 그 부끄러운 하초(下焦)를 버젓이 다 드러내놓았다. 인권은 사회제도 자체를 초월하는데, 무슨 ‘자본주의 잣대’ 운운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들이 과연 세계인권선언문이나 국제인권규약, 국제아동협약을 한번이나 제대로 읽어보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지난 7년간 북한인권에 꿀먹은 벙어리였던 국가인권위조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10대 인권과제’에 북한인권 문제를 포함시키며 얄팍하게 변신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태도이지만 그나마 일말의 양심은 속이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명색이 ‘불교인권위’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면서 인권문제에 남북을 갈라서 보려고 하니, 이 단체를 어떻게 인권단체로 볼 수 있겠는가. 막말로 인수분해, 방정식도 못 푸는 인간이 대학 수학과 교수 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인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 불교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부처 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땅 속까지’ 그 모든 육도(六道) 중생을 제도하자고 한다. 석가모니든, 예수든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출현한 성현이 아닌가? 자칭 ‘불교인권위’에게 한번 물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구별해서 제도하라고 했더냐? 그럼에도 북한사람들 인권을 거론하면 ‘민족화해’에 찬물을 끼얹고 ‘민족 대단결 정신’에 위배된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라빠진 개뼉다귀들의 소리인가?

이들에게는 ‘스님’이니 ‘승려’니 하는 이름을 붙여줄 것도 없고, 그 있는 모습 그대로, ‘땡초’라고 부르는 것이 우선 지장보살의 뜻일테고, 또 앞뒤가 딱 들어맞는 말일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지금 당장 누더기 먹물 옷 다시 걸치고 산으로 들어가 초발심, 용맹정진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인권위는 지금 바로 해산하고 소속 회원들은 모두 산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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