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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로 지식인층이다. 최근 들어 국제적 관심이 대상이 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도 외국의 학자, 교수, 법조인 등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지식인들만이 북한인권문제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나선 젊은 여류 법조인이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약칭 시변) 북한인권위 간사인 이두아(34. 사법고시 25기 ) 변호사는 올해 열린 ‘61차 UN인권위’에 참가, 참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장면까지 지켜봤다.
이두아 변호사를 만나 유엔인권위 참관 소감과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여론 및 인권문제에 대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北 인권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
–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우연한 기회에 북한인권문제를 접하게 됐다. 주변 아는 분들과 모임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 Hidden Gulag (감춰진 수용소. 데이빗 호크 저)이라는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보고서 번역을 하게 됐다. 모임의 구성원들이 분량을 나누어 번역하고 출판비용까지 마련해 책을 출간하게 됐다. 일반인들이 생활하다보면 그런 문제에 접할 일이 없지 않는가. 그 보고서를 번역하면서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이때가 2003년인데, 이후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올 1월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이 출범됐다. 지금까지 있었던 민변, 헌변 등 다른 변호사단체에서는 북한인권을 다루지 않고 있다. 변호사들이 인권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석연변호사님과 함께 시변 내 북한인권위원회를 만들게 됐다.
– 이번 ‘61차 UN인권위’ 참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인권단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유엔에 등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61차 유엔인권위가 열렸다. 시변에서 3월 25, 26일 워크샵을 열었는데, 이때 북한인권문제에 주력을 기울이자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됐다. 그때 벌써 회의가 시작됐긴 했지만,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인권문제가 거론된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준비해서 가게 됐다. 제네바에는 4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동안 있었으며, 결의안 표결 장면도 지켜봤다.
– 제네바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했나
4월 1일 도착해서 2, 3일에는 벨기에와 일본 NGO 단체들을 만났다. 일본은 회의석상에서 여러 번 납북자에 대해 문제제기 했으며, EU(유럽연합)와 함께 결의안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북한인권에 관한 단체가 생긴 지 꽤 오래됐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부끄러웠다. 요즘 한국에서 반일감정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활동을 폄하하는 분위기도 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순수하신 분들이었고 배울 점도 많았다. 이후 폴란드 소재 ‘헬싱키 재단’, ‘쥬빌리캠페인’ 등 북한인권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단체들, 우리 대표부 참사관과 얘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이두아 변호사. 하지만 그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
또, 뜻밖에 발언 기회가 주어져 4월 8일과 15일 두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8일엔 ‘여성, 아동권에 관한 아이템 13’에 대해 발표했다. 북한 아이들이 지속적 영양 부족에 처해있는 상황, 학교 교사들이 공개처형을 강제로 보게 해 어른이 되어서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 등 인권침해 사례를 공개했다. 15일엔 ‘아이템 14’에 관해 발표했다. 납북자문제를 주로 다뤘는데,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일반 납북자들, 베트남 전쟁 때 포로가 돼 북송된 사람들에 대해 문제제기 했다.
한국에도 정부가 이런 문제에 침묵하는 것을 무책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말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여기 있는 UN의 많은 나라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다고 이야기했다. 또 우리 동족이 굶어죽고 있고,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납북되고 있으니 당신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1일까지는 결의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었다. 각국 대표들에게 서신을 보내 결의안 1.(b) 항목에 있었던 ‘영아살해’ 항목이 왜 없어졌는지 문제제기 했고, 각국은 북한에 경제원조 시 인권문제도 병행해서 지적하라는 권고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한국의 北인권 무관심에 국제사회 비난
– 공개처형 동영상에 대한 반응은?
나는 늦게 도착해서, 공개처형 동영상 상영 때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이후 폴란드의 헬싱키 재단 관계자를 만나 얘기를 듣게 됐다. 그는 나치만행에 대해 얘기하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전쟁과 공산주의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폴란드 사람이 먼 나라 일까지 왜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했는데, 그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더 분노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한국 사람들이 북한인권문제에 입을 다무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거나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협조하지 않는 중국에 압력을 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한국 사람들은 5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동포들에게 왜 관심 갖지 않느냐는 등의 말을 들었다.
–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반응은
지구상에서 수백만이 3년 동안 굶어죽은 나라는 없다. 북한은 먹고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 노력하면 먹고 살 수 있는데도 체제의 문제로 인해 굶어죽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은 이에 대해 우리보다 분노하고 있으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를 분명히 언급해야 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3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찬성국이 하나씩 늘고 있고, 기권국도 하나씩 줄고 있다. 반대하는 국가는 중국, 미얀마, 쿠바 등 국제적으로 인권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나라들뿐이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존재하고 또 사안이 심각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北도 인권문제 없다고 부인 못해
– 북한측 대표부의 반응은 어땠나
표결하기 직전 EU 의장국인 룩셈부르크가 결의안을 설명했다. 북한 대표부는 이번 결의안은 서구적 기준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신들은 주체사상,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고,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권을 전복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얘기하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학살을 자행하고도 무슨 권리로 우리의 인권을 거론하느냐고 말했지만, 끝까지 인권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일본에 대해서도 2차 세계대전 전범인 나라가 무슨 근거로 인권문제를 거론하느냐는 식이다. 이미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 전세계는 북한인권문제의 위급성을 깨닫고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
– 표결과정은 어땠나
표결은 3시 20분에 시작해서 50분 정도에 끝났다. 원래 수정안이 제출되거나, 부결되어서 재투표하는 등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이의 없이 쉽게 끝났다.
북한대표부는 결의안 초안을 가다듬는 동안에 인도네시아 의장한테 결의안으로 하지 말고, 의장성명 정도로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다. 북한대표부도 통과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탈북자 증언에 공개처형 동영상까지 상영됐는데, 더 이상 발뺌할 노릇이 없었을 것이다.
– 결의안 내용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가
우선 지난해 임명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대한 지원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다. 또 특별보고관이 북한에 못 들어간 상태에서 임기가 끝났으니까, 임기연장을 통해 활동을 좀 더 했으면 하는 게 우리의 요구였다. 유엔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의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
전문가들과 결의안을 검토해봤는데, 법률적으로 들어가야 할 사항은 다 들어가 있다. 우리가 아쉬웠던 것은 북한에 경제 원조를 할 때 인권문제를 언급해달라고 각국에 권고하는 문구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한두 줄 있긴 했지만, 항목을 따로 떼어서 자세히 거론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 태도 비겁해”
–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우리는 남한 사람이니까 북한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상관도 없는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게 인상깊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8일 발표할 때 한국에도 이 부분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 우리 정부가 침묵을 지키는 게 무책임하다고 느끼는 한국 사람도 많다고 얘기했다. 그때 최혁 대사가 그 장면을 봤다. 이후 최혁 대사가 인권문제도 언급하고, 표결 전 정부 입장을 발표하자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활동이 작은 것이지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국제적 인권단체들과도 연대가 조금씩 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북한인권문제를 언급하는 변호사 단체가 많다. 한국 변호사 단체가 이런 문제에 나선다고 하니까 외국 단체들도 반가워했다.
– 지식인들이 북한인권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참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통적이다.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지식인들은 분명 나중에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 미얀마 군부독재에 대해서는 항의하면서도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것은 그들의 이중 잣대이다.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그들의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 ‘시변’에서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가
이번과 같은 국제회의나 모임에 참석해 도움을 줄 것이다. 법률 분야를 다루다 보니 NGO단체에서 든든해 하는 것 같다. 우리도 뿌듯하다. 개인적 욕심으로는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기금마련에 나서고 싶다. 콘서트나 자선행사를 펼쳐, 그 수익금으로 탈북자들을 지원하거나 북한인권상황을 알리고 싶다. 어떠한 일이든 재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식의 행사들이 자율적으로 활발하게 개최된다. 한국에서도 북한인권의 바람을 일으켜보고 싶다.
– <데일리엔케이>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추상적 얘기일 수도 있는데(웃음) ‘희망’이란 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길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다보니 그 길이 생겼다. 우리도 지금은 없는 길을 가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다보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북한인권 실태를 안다면, 이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데일리엔케이>가 그 길에서 큰 역할을 해내길 바란다.
[이두아 변호사] -1971 경북의성 출생 -1993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 2005. 1~ 법무법인 성지 변호사 – 2005. 1~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 북한인권위원회 간사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