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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 [아름다운 집]. 이 책의 90% 이상은 ‘이진선’이라는 사람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진선은 추정컨대 1920년생으로 충남 충주 출신이다. 연희전문(연세대학교의 前身) 재학시절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혁명가가 되었고 해방이후 해방일보 기자, 로농신문 남조선부 기자, 민주청년 공산주의교양부 기자를 거쳐, 부주필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좌천, 교정부원으로 쫓겨나 한직을 머물다 정년 퇴직, 1998년 10월 1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 책은 이진선이 연희전문에 입학하던 날인 1938년 4월 1일부터 생을 마감한 날까지의 일기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해방이후 월북하여 평생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다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책의 90%이상은 이진선의 일기이지만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에 두 차례 ‘편집자’라는 사람이 끼어 든다. 이 편집자는 한 신문사의 기자이다. 어느 날 그는 연변에서 걸려온 엉뚱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밑도 끝도 없이 시간과 장소를 못박아 놓고, “조선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록을 넘겨주겠으니” 연변으로 날아오라는 것이다.
기자의 직감으로 무언가 있음을 짐작한 ‘편집자’는 연변행 비행기를 타고, 약속된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보따리 하나를 넘겨주며 이 것을 책으로 엮어 줄 것을 부탁하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 보따리에 든 것이 바로 이진선이 60년 동안 쓴 일기 뭉치 – 이 책 [아름다운 집]의 ‘원판’이라 할 수 있다. 편집자는 이진선의 일기를 밤새워 읽고 이를 옮긴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논픽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종의 ‘안네의 일기’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에는 ‘손석춘의 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 책을 ‘논픽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용중에도 논픽션처럼 보이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해 놓았다.
예를 들어 “맞춤법을 현대 표준어에 맞춰 문장을 가다듬었다”든지, “예스런 종결어미와 군데군데 섞어 쓴 한자를 그대로 살리는 것은 더욱 큰 모험이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토로, “깨알처럼 작은 글자들 위로 겹쳐진 흘림체의 촘촘한 가필들은 더러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워 안경은 물론 큰 돋보기로 몇 시간을 들여다보기도 했다”는 설명 등은 논픽션이라는 착각을 불어올 만하다.
특히 손석춘씨는 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장으로, 꽤 알려진 언론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편집자’의 직업도 기자로 손석춘씨가 1인칭 시점에서 쓰고 있으니, 독자들은 그야말로 “손석춘씨가 한 익명의 노인으로부터 수첩을 건네 받아 약속대로 펴낸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소개한 한겨레신문 서평에도 “현직 신문사 부장이자 언론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손석춘씨가 소설가로 변신했다”(2001년 6월 4일자)고 운을 떼고 있다. 또 “손석춘씨가 ‘작심’하고 쓴 소설”(한겨레 2001년 9월 22일자), “치밀하게 현대사를 되짚어 살려낸, 실화보다 더 실감나는 소설”(들녘출판사 보도자료), “등단작”(한겨레 2001년 6월 4일자)으로 소개하고 있다.
The DailyNK 기획실